“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무슨 한(限)이 남으오리까.”
그러나 심훈은 1937년 ‘그 날’이 오기 전에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환희의 해방, 그러나
우리 겨레의 머리 속에는 ‘해방’을 온몸으로 기리고 기다리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중국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는 일본의 항복 선언을 전해 듣고는 환희의 ‘만세’를 부르지 않고 “아, 큰일 났구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일어났다”며 한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뜻의 역사가’ 함석헌도 “도둑처럼 해방이 왔다”고 걱정했고, 시인 오소백은 아예 ‘아, 우울한 해방’이라고 한탄의 시를 쓰기도 했지요. 한 쪽에서는 해방을 환희하고 만세를 불렀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한숨 쉬며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해방의 다른 이야기를 오늘의 우리는 마음으로 좀 깊이 읽어보아야 하겠지요.
그때, 해방을 맞아 우리 겨레 모두가 환희하였지만, 그 해방이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힘이 일본을 퇴패시킴으로 이루어졌기에, 이 강대국들인 ‘외세’가 우리 겨레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 자명하다는, 국제 역학을 아는 분들은 한탄과 염려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가 맞은 해방임에도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가져온 것이 아님에 대한 또 다른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민족독립운동 세력이 나누어져서 서로 공방전을 해대다가 ‘도둑처럼’ 온 해방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걱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대의 지성들은 이념갈등·정치갈등·지역갈등의 대혼란의 도래를 예견하며, ‘우울한 해방’이라고 절규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겨레는 세계사적 ‘모순’과 민족사적 ‘모순’이 용해된 체제로 남과 북이 나뉘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복 70년’, ‘해방 70년’이라 하는 것은 기쁨의 70년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이 세계사적ㆍ민족사적 ‘모순 70년’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칸막이 허물기, 그 날을 향한 첫 내디딤
모든 학문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 역사학은 ‘성찰의 학문’이어야 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 ‘모순 체제’에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요. 민족시인 심훈이 기리고 기다리던 ‘그 날’은 이 ‘모순 체제’의 등장이 아니었습니다. 일제식민통치에 맞서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던 우리 선조들이 기다린 ‘그 날’, 우리는 다시 ‘그 날’을 기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큰 대열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을 기리고 기다리는 첫 내디딤은 우리 안에 있는 ‘칸막이’와 우리 밖에 있는 ‘칸막이’를 허무는 것 아닐까요. 조금 생각이 다르다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우리 안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바로 여기에 ‘평화를 이루는 자’(peacemaker)의 마음이 들어서겠지요.
바로 이 때 우리 밖에서 이념, 정파, 신분, 지방의 칸막이들을 철거할 신앙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새로운 ‘그 날’은 우리 ‘예수 따르미’들이 마땅히 앞장서 길을 열고 맞이해야 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이지요. 인간이 만든 ‘모순 체제’를 떨쳐버리고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가는 것 말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아 우리는 아직 ‘그 날’을 기리고 기다립니다.
박정신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와 숭실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정년 이후 지금은 숭실대학교 법인이사로 있다. <고쳐 쓴 한국 기독교 읽기>, <상식의 역사학 역사학의 상식> 등 많은 책을 내면서 후학들과 함께 문화-시민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문화ㆍ학술 무크지 <이제 여기 그 너머>의 발행인.
박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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