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 신명진 사서, 오른팔과 두 다리 없어도 ‘희망’ 노래

서울시 도서관의 사서, 외팔의 수영 선수, 의족의 마라토너. 모두 한 사람을 수식하는 말이다. 지금이야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일이 그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이다. 신명진 씨는 오른 팔과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이다.

왜 하필 저입니까?
30여 년 전, 명진 씨가 5살 때의 일이었다. 소래포구 근처 집 앞에는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운반하는 철길이 있었다. 언제나 빠른 속도로 지나가던 기차가 그날따라 서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너나 할 것 없이 기차 위로 올라갔다. 순간 기차가 덜컹 움직였고 뛰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바닥에 뛰어내리던 순간,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어린 명진이는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기차는 명진 씨의 양다리와 오른손을 앗아갔다.
이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평생에 가장 되돌리고 싶은 선택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 누구라도 원망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무게의 날들이 이어졌다.
‘하나님, 바쁘신 나의 하나님. 어느 가난하고 가엾은 이들을 돌보시느라 그리 바쁘셨나요? 제가 사고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조금만 주의를 주시지, 왜 저를 보지 못하셨어요…’

엄마,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사고 직후, 혼비백산이 되어 달려오신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병상 생활 1년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부터였는지 어머니는 저를 업고 옥상에 올라가 하염없이 우셨어요. 아버지 또한 술로 밤을 지새우시는 날이 많으셨지요.”
그러던 두 분이 명진 씨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로 용기를 내셨다. 그때, 근력을 키우면 의족을 통해 걸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찾아왔다.
명진 씨에게 두 가지 목표가 생겼다. 걷는 것, 그리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의족을 맞추고 조금 훈련하면 금세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수도 없이 넘어지기만 했어요. 도대체 얼마나 더 연습해야 걸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이 찾아왔어요. 그러다 조금씩 걷기 시작했고, 곧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똑같이 대해주었던 친구들
일반 학교로 진학한 명진 씨의 학교생활은 편치만은 않았다. 선생님은 특별한 배려를 해주셨지만, 약자 취급을 받는 것이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명진 씨를 여느 또래들처럼 대해주던 친구들도 만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만난 친구들은 참 특이했어요. 함께 야구 경기를 할 때면 제가 잡을 수 있도록 공을 던지지도 않았고, 제가 뛸 수 있도록 배려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다가 경기 후 헉헉거리는 저에게 다시 농구를 하자고 하지 뭐에요.”
공부는 관심 밖이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대학교에 진학했다. 비록 남들보다 불편한 몸을 갖고 있지만 여느 청년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이 조금씩 열렸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대학 졸업 후, 수십 번 이력서를 쓴 끝에 광고 인쇄를 하는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에 큰 변화를 준 만남이 찾아왔다. 무언가 사무실 밖에서 퉁퉁퉁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 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무실이 2층이었는데, 어떤 분이 한 손으로 휠체어를 잡아 올리며, 한 손으로는 계단을 짚고 올라오고 있었어요. 장애를 가지고 그렇게 열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진 분을 처음 본 거예요. 그 후로 원용이 형은 제 인생의 은인이 되었죠.”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원용 형 덕분이었다. 25미터를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노력한 끝에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또한 교육청 기능직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목표도 이뤘다.
꿈을 적으면 이루어진다는 의미의 ‘드림 노트’도 적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 사귀기, 다이어트, 영어 공부, 사서 되기, 성경책 완독하기…’ 꿈들이 하나씩 이뤄졌다. 여자 친구를 사귀기도 했고, 서울시에서 장애인 특채로 공고한 사서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실패를 당연히 받아들이던 그에게 조금씩 행복이 찾아왔고, 원망 대신 감사를 배워갔다.
명진 씨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백두산 정상에도 올랐고, 9시간 50분의 사투 끝에 42.195km의 마라톤도 해냈다. 꿈꾸던 도전들을 하나씩 이뤄갈수록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배운다고 한다.
“뉴욕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였어요.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일행도 잃어버렸고, 점점 지쳐갔어요. 결국 발을 헛디디며 넘어졌는데 한 미국인 아주머니가 끝까지 동행해주셨어요. 계속해서 저를 응원해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셨어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같았어요.”
이제는 자신도 넘어져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최근 자신의 이야기 <지금 행복하세요?>를 펴냈다. 주저앉아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한 때는 차라리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너무 감사합니다. 제 옆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처럼 저 또한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명진 씨의 마지막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나님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고 저는 믿어요.”

우수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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