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처럼 낮게 임하신 예수님

내게 일평생 가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겸손한 마음이다. 그토록 겸손한 마음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상을 입으셨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데 임하시고, 가장 낮은데서 모든 사람들을 품으셨다. 예수님은 땅처럼 낮게 임하셨고, 바다처럼 낮게 임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품은 대지처럼 광활하고, 바다처럼 넓으시다. 온 인류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는 까닭은 예수님은 낮은 곳에서 인류를 품고 계시기 때문이다.
낮은 데 임한 땅은 어떤 것도 차별하지 않는다. 겸손한 마음에게는 차별이 없다.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차별 없이 대한다. 땅은 씨앗을 받아 키운다. 작은 씨앗을 받아 거목으로 키우고, 아름다운 꽃나무로 키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땅이다. 낮은 데 임한 땅이 씨앗을 키우듯, 겸손한 사람은 작은 것을 받아 키우는 사람이다. 낮은 데 임한 사람은 땅의 흙처럼 살아간다. 겸손(Humility)이란 말의 어원이, 흙을 의미하는 부식토(humus)에서 유래되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다. 흙으로 만드신 까닭은 땅의 흙처럼 낮은 자세로 살기 원하시는 바람 때문이시다. 인간은 흙처럼 살 때 가장 평화롭고, 가장 안전하다. 파커 J. 파머는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져도 괜찮은 땅이다. 겸손은 그 안에서 더 확고하고 충만한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불안해지고, 흔들리고, 공허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까닭에 위에 너무 오래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위로 올라가는 이유는 내려오기 위함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말자. 자신을 낮추는 것을 두려워말자. 땅처럼 자신을 낮출 때 공허는 충만으로, 불안은 평강으로 바뀐다.
겸손한 마음은 정말 향기롭다.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겸손한 마음에 평화가 넘친다. 날마다 정원을 가꾸듯 겸손한 마음을 가꾸도록 하라. 겸손은 저절로 자라는 잡초가 아니다.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 할 씨앗이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날마다 가꾸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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