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passion)이 없으면 매사가 미지근합니다. 감사의 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감사의 깊이도 그만큼 깊어집니다.

한국교회가 파송한 첫 선교사, 이기풍 목사님의 이야기는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1907년 평양신학교 1회, 최초의 목사 7명 중 한분인 이기풍 목사님은 예수 믿기 전에는 술주정과 박치기로 유명한 깡패였답니다. 장대현교회 건축현장에 가서 때려 부수고 마펫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져 피투성이가 되게 한, 거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신이 돌을 던져 다치게 한 서양 선교사를 생각하다가 도대체 저 사람들이 얘기하는 ‘예수’라는 분이 누군지, 조선 땅까지 와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며 ‘예수’를 전하는 저 서양 사람들은 왜 저렇게 열심을 내는지 궁금한 한편 두려움에 싸였답니다.

그 밤에 청년 이기풍은 꿈속에서 기이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더니 가시관 쓰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놀라 잠에서 깬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마펫 선교사님께 달려가 엎드려 용서를 빌고, 새로운 길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딸 이사례 권사님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후부터 아버지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만 트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불량배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시할 정도로 ‘겸손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달라진 사람
이기풍 목사님은 그 후 무속과 미신으로 가득한 땅 제주에서 숱한 고생과 눈물로 믿음의 씨앗을 뿌렸고, 13년 사역의 결과, 성안교회를 비롯한 11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후에도 광주, 순천, 고흥, 벌교, 여수 등 호남의 시골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지요. 얼마나 사랑이 많으셨는지, 아침저녁 가릴 것 없이 굶주린 거지들과 한센병 환자들이 몰려와서 목사님 댁 식사시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랑의 식탁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과거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생명 바쳐 사신 이기풍 목사님 삶을 묵상해 봅니다. 변화된 삶의 첫 단추는 구원에 대한 ‘감사’ 아닐까요?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아름다운동행 감사운동추진위원장으로 감사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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