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웬 선교사 (2)

오웬·윌슨·포사잇 선교사·여수 애양원
1909년 4월 오웬 선교사가 장흥에서 선교 중 급성 폐렴으로 광주로 옮겨지자 동역자 윌슨 선교사(Robert M. Wilson)는 목포에 있는 포사잇(William H.Forsythe) 의료 선교사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포사잇 선교사는 나주까지 배를 타고 와서 다시 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는데, 광주로 가는 길에 한 여인이 길가에 엎드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말에서 내려 그 여인을 안아보니 한센인(나병환자)이었다. 숨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그는 여인을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광주까지 갔고, 그 사이 오웬 선교사는 사망한다.

광주제중원에 그 여인을 눕혀 치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병상이 없었다. 그러자 오웬의 부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오웬의 침대를 내주며, 그 여인을 치료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주제중원에 있던 조선인들이 함께 치료받기를 거절해 할 수 없이 포사잇은 광주 봉선동 가마터로 그 여인을 데리고 가 치료했다.
포사잇 선교사의 한센인을 돌본 사건은 다른 선교사들과 조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리하여 1911년 윌슨과 동료 선교사들에 의해 광주나병원이 세워졌고, 나중에 최흥종 집사의 땅 기부로 확장되었다.
선교사들이 치료해준다는 사실을 듣게 된 전라도 한센인들이 광주로 몰려들었다. 600명 이상의 한센인들이 광주로 몰려들자 전염을 염려한 광주 시민들이 나병원을 이전할 것을 조선총독부에 건의하게 되었고, 선교사들도 광주나병원보다 더 넓은 병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여수 애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후 포사잇 선교사는 병들어 미국으로 치료차 돌아갔고, 1918년 미국 켄터키 루이빌에서 천국으로 입성했다. 포사잇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한센인들은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 기념비를 광주나병원에 세웠다. 그리고 나중에 여수 애양원으로 이전할 때 포사잇 선교사 기념비를 뽑아 한센인들이 옮겼다고 한다.

여수 애양원·손양원 목사·맥켄지 선교사
우리는 ‘애양원’ 하면 주로 손양원 목사를 생각한다. 손양원 목사는 부산 상애원 원장으로 있던 맥켄지 선교사(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를 만나 상애원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다. 부산 상애원은 1910년에 호주선교부에서 세운 경남 한센인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손양원목사는 한센환우들의 친구가 되었고, 손양원 목사의 경남성경학교시절 학비를 한센환우들이 내어준 적도 있다. 손양원 목사는 후에 평양신학교에 진학하여 여수애양원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고, 그 감격이 손 목사를 결국 애양원교회로 오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손양원 목사의 신사참배 거부로 가족이 흩어졌을 때도 그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한국교회가 아니라 진주 남산다리 밑 ‘한센병 걸인들’이었다.
손양원 목사의 위대한 신앙에는 오웬, 포사잇, 윌슨, 한센인, 맥켄지 등 수많은 ‘생명공동체’의 흔적들이 있다. 하나님은 오웬의 죽음을 통하여 포사잇, 윌슨, 손양원, 여수 애양원. 진도 분토리교회, 완도 약산제일교회, 완도 신학교회라는 ‘생명공동체’를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존경할만한 그리스도인 가문을 가졌는가?
광주 양림동에 가면 1914년에 세워진 오웬 기념각이 있다. 광주선교부에서 사역을 하던 오웬은 성경공부를 할 만한 강당의 필요성을 느껴 친지들에게 세워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하였다. 그의 사후 오웬의 할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오웬의 부탁이 생각나 사재를 털어 오웬 강당을 세웠다. 그것이 오웬 기념각이다. 그래서 기념각 정문 위에는 오웬 선교사의 할아버지 윌리암 L. 오웬과 오웬 선교사 이름이 적혀 있는 기념명패가 있다.
오웬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할아버지의 신앙 지도를 받고 자랐다. 오웬 기념각에서 쉐핑(Elizabeth J. Shepping) 선교사는 이일여자신학교를 설립해 오늘의 한일장신대학이 되었다.
그 기념명패를 보고 있으니 오웬이라는 손자를 한국 땅에 묻은 할아버지의 신앙과 사랑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습과 권력의 가문이 된 한국교회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오웬을 땅끝 조선에 보내고 그 땅에 묻은 오웬의 가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박원희
낙도선교회 대표로서 우리나라의 440여 섬과 14만 곳의 오지를 복음화하기 위해 38명의 섬, 오지 목회자와 동역하며 한국의 신학생들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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