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월은 차분하기보다는 공중에 붕 뜬 달입니다. 한 해가 이미 시작되었는데 구정 때문에 새해를 한 번 더 맞게 돼요. 게다가 졸업‧입학시즌이기도 하고요. 싫든 좋든 가족끼리 만나게 되고,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게 됩니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가족 모임이 부담스럽고, 3월부터 시작되는 신학기가 두렵지요. 이런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때려 부수는 영화가 최고인가 봅니다.
역시나 첩보액션물 두 편이 지난 구정흥행을 주도했어요. 하나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사극 ‘조선명탐정’,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펼쳐지는 성인액션활극 ‘킹스맨’입니다. 그중 ‘킹스맨’은 청소년관람불가 라는 제약을 극복하고 일궈낸 성적이라는 점에서 보다 눈길이 갑니다.

성경 속 이야기 뒤틀기
‘킹스맨’의 비밀요원 해리 하트는 중동에서 작전 수행 중,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17년 후, 죽은 동료의 아들 에그시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비밀요원 후보로 올리고, 그와 함께 악당 발렌타인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됩니다.
악당 발렌타인의 의도는 그럴듯해 보여요. 지구라는 숙주가 인간이라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파괴되니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인간 개체 수를 줄이자는 거지요. 그러면서 영화는 성경 속 ‘노아’와 ‘바벨탑’ 이야기를 교묘하게 뒤틀고,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보수기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노출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꼭 반기독교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상식과 몰상식의 극단적인 예를 충돌시키는 현실의 우화로서, 폐쇄와 차별로 기호화된 기독교에 대한 관습적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불편해하기보다는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오독해온 교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뒤돌아봤으면 합니다.

현실과 영화 모두 신세대 잔혹극
그래도 어쨌거나 이 ‘킹스맨’은 꽤 불편한 영화입니다. 사람을 많이 죽여요. 그것도 상당히 엽기적으로 말이죠. 007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아기자기하고 품위 있는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건 비슷한 데, 목이 떨어져 나가고 신체가 절단되는 유혈 낭자한 19금 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지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모양새는 미성년자관람불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영화의 주인공은 미성년 언저리에 걸쳐져 있는 인물들입니다. ‘킹스맨’ 감독 매튜 본은 그의 2010년 작품 ‘킥 애스’에서도 이처럼 가치관 성숙 이전단계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지요. ‘킹스맨’에서 주인공의 연령대가 약간 올라갔을 뿐, 이 두 작품은 등장인물 관계나 전개 방식에 있어서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구조와 색깔을 취한 성장영화입니다. 멘티의 성장을 위해 멘토가 희생되는 것도 여전히 반복되고요.
이렇듯 감독은 성장담에 관심이 많은데, 영화 속 청소년과 젊은이들 앞에 놓인 상황은 무척 잔혹합니다.
신세대 잔혹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요즘 젊은 층에게 있어서 전쟁하면서 죽이고 파괴하는 건 일상입니다. 물론 온라인과 미디어 속에서 말이지요. ‘죽이다(kill)’는 살해와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개념보다는 어느덧 ‘정리/처리(clear)’의 의미로 더 보편화하였습니다. 게임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래요. 레벨-업과 욕망 성취를 위해 방해요소를 정리/처리해나가지요.
‘킹스맨’은 이런 현실에 대한 블랙코미디예요. 특히나 영화는 죽음을 마치 게임 캐릭터 소멸 과정처럼, 인물의 성장을 게임 레벨-업 과정처럼 묘사합니다.
요즘 세대들은 그렇게 원초적인 것을 시뮬레이션으로 반복하며, 승자독식‧적자생존의 정글과 같은 현실을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임택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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