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삶 김진숙 목사 이야기

미국 북가주 시애틀에서 ‘노숙인의 대모’라는 닉네임을 가진 열정의 사역자 김진숙 목사가 ‘보랏빛 셔츠’를 입고, 전주대학교의 초청으로 3월 2일 한국에 왔다.
35세의 젊은 시절, 사회복지를 더 공부하고자 건너갔던 태평양 바다를 그의 나이 꼭 80세가 된 해에 사역을 위해 되 건너오는 김 목사의 마음은 감회도 깊고, 조용한 설렘이 있다.
평생을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애쓰고, 늘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며 24시간을 쪼개며 바쁘게 살아온 기념비적인 사역 이야기와 연구내용들을 나누어달라는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의 상징이기도 한 ‘보랏빛 셔츠’, 백발의 단정한 머리, 그리고 단아한 표정에서 거친 노숙인들을 품어내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돈다. 정말 오랜만에 고국 땅을 밟은 김 목사는 한국의 노숙상황도 돌아보고 한국사회와 노숙사역자들에게 도전을 주고 싶어 마음이 바쁘다.

‘Jean’의 보랏빛 인생
미국의 노숙인들은 김 목사를 이름 그대로 ‘Jean’이라 친숙하게 부른다. 노숙인들의 엄마이자 언니(누나)이자 친구이며 보호자인 ‘Jean’은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다. Jean목사에게도 노숙인들은 경계의 대상이 아닌, 그대로 ‘가족’이다.
김 목사를 만나면 금세 ‘보랏빛’이 전해져 온다. 그의 옷도, 머플러도, 그의 모든 소지품에서 보랏빛이 느껴진다.
“지금이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사순절을 상징하는 색깔로 아픔과 고난, 애도와 참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순절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그리스도 앞에서 신앙을 다짐하는 부활절 전 40일인데, 제게는 매일 매일이 사순절이예요. 그래서 보라색 속에 숨은 이런 심오한 의미를 통해 나를 생각하고, 노숙자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해요.”
보랏빛은 그의 삶의 빛깔이고, 그의 의미가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었다.

‘노숙 근절’ 운동 티셔츠
김 목사가 여성 노숙인들을 위해 ‘막달라마리아교회’를 세우고 노숙사역을 시작할 때, ‘노숙 근절’(End Homelessness)이라 선명하게 새겨진 보랏빛 셔츠를 만들어 보급했고, 이 티셔츠는 기독교 단체나 교단의 적극적인 참여로 미국 전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부자나라 미국에 노숙자가 이렇게 많은 현실을 슬퍼하고, 노숙자를 많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회개하고, 그 제도적인 근본원인을 외면하면서 노숙자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죄를 느끼고,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고, 섬기면서 ‘노숙 근절’ 사역에 몸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사순절 색깔인 보라색을 자신의 색깔로 택했다.
이 운동으로 미국 내 많은 기독교인들이 노숙인 사역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었고, 마침내 막달라마리아교회 설립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김 목사의 회갑잔치도 한 몫 했다. 회갑을 앞두고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 어떤 회갑잔치를 하고 싶은 가고.

노숙인들과 함께 한 회갑연
김 목사는 주저하지 않고 노숙인들을 위한 만찬을 공원에서 열어달라고 했고, 아들은 ‘그것은 엄마를 위한 잔치가 아니라 노숙인들을 위한 게 아니냐’ 했다. ‘엄마를 위한 잔치를 하고 싶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노숙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엄마의 기쁨’이라는 설득에 아들이 엄마의 회갑잔치를 노숙인을 위한 잔치로, 공연팀까지 초청하여 치렀다고 한다.
김 목사는 금년으로 팔순을 맞았다. 어떤 생일잔치가 준비되는지 물었다.
“다섯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으로 팔순잔치를 대신하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제가 온 삶을 바쳐 사역한 노숙인들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내 삶의 전부이자 내 재산의 전부이기도 하지요.”

김 목사가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왜 미국에서 노숙자가 되어야 하나?(45가지 정치 경제 사회적 이유)
▲노숙 가난에 대한 성서적 연구
▲Why, How, What to do. (102가지 제안)
▲다른 사람들은 노숙사역을 어떻게 하고 있나?(미국교회 노숙사역 103가지 사례연구)
▲보랏빛 여성, Jean의 이야기(회고록).

미국 노숙인 사역에 대한 자료가 없어 나름대로 하나씩 만들었던 것을 모으고, 6년 동안 미국장로교단의 위촉으로 교회를 순회하며 한 노숙인사역 관련 성경연구와 설교를 엮은 소중한 자료들이다.

서른다섯에 떠난 고국 땅
사실 그는 55년 전, 한국신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일을 주지 않던 시절이어서 목사되기를 거부하고 평신도의 삶을 선택했다. 미국교회의 장로로 섬기던 그가 뒤늦게 목사가 되고, 자석에 끌리듯 노숙인 사역에 이끌려 30여 년을 용광로처럼 노숙자 사역에 삶을 불태웠다.
김 목사가 30여 년의 세월을 노숙인 사역에 온통 바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별한 고난과 아픔이 있었다. 아들의 죽음, 그리고 민주화운동으로 겪은 고난과 그 이후 ‘한청련’과의 결별.
“열일곱살 아들을 잃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살 수가 없어 제2의 고향인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시애틀로 왔습니다. 거기서 인권운동하던 중에 제 삶이 뒤집어지듯 변했습니다. 성경을 얼마나 읽었던지, 87년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6년 여 동안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결국 ‘주님 뜻대로 하시라’는 탄식과도 같은 절규 이후에 이끌림 받은 것이 목사안수였고, 노숙인을 위한 섬김이었어요.”
눈물 샘이 터진 것 같은 슬픔과 절망 속에 영혼의 노숙을 경험하면서 거리의 노숙자들을 가슴으로 보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이를 두고 김 목사는 “만사에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땅끝’ 이전에 먼저 가야 할 곳
김 목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적 삶을 사는데 좀 더 민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라고 했는데, 땅끝에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이 있고 온 유대가 있고 사마리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한 사역을 간과하고 땅끝을 향해서만 집중하는 것은 부족함이라고 일갈한다.
노숙인 사역에 대해 김진숙 목사의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다.
“언제까지 일하느냐고요? 노숙인들의 친구가 되는 것에 은퇴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생명 거둬갈 때까지 하는 거지요. 그들에게 밥을 먹게 하는 것은 극히 기본적인 겁니다. 버려지고 망가진 사람들에게 언젠가 사람 구실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 밥 못 먹어 죽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영적 곤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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