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원유 유출사고 현장을 가다

무엇 때문인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왜 그렇게 피해가 커지도록 아무 손도 쓰지 않았던 건지. 들려오는 소리는 많지만, 저는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커멓게 변해버린 죽음의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짓고 울먹이던 이웃들의 슬픈 표정만으로도 이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짐작이 갑니다.

숨쉬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힘없이 흐물대며 죽어가던 바다 생물들의 고요하지만 처절한 외침을, 저는 보았습니다. 어느덧 생명보다 욕정이 더 큰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어이없이 아파하고 죽어가는 피조물들의 눈물에 가슴이 멍집니다.


지난 화요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의 한 사람이 되어 태안앞바다 원유 유출사고가 난 만리포 해수욕장에 다녀왔습니다. 인근지역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벌써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그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태안바닷가의 상황이 짐작되었습니다.


사고현장에 도착해서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끝없는 검은 기름, 하얀 백사장은 흔적도 없이 기름 범벅이 된 모래사장, 잘 죽지도 않는다는 불가사리까지 죽어 뒹구는 모습을 보니, 그냥 기도와 한숨만 번갈아 나왔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한 구석 없이 오염물을 뒤집어쓴 봉사자들의 모습, 그러나 젊은 청년부터 허리가 구부러진 할아버지까지 그곳에 모인 봉사자들 모두가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마음 아파하며 최선을 다해 기름을 제거했습니다. 한 통, 또 한 통…, 시커먼 기름이 바닷가에서 기름통으로 모아지고 옮겨질수록, 그렇게 모아진 기름통이 또 하나씩 채워질수록, 봉사자들의 옷과 얼굴은 점점 더 더러워지고, 점점 더 지저분해졌지만 어느새 한마음이 되어 기름을 건네주고 건네 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따스해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름 찌꺼기들이 인근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제가 사는 섬에도 기름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섬 지역 등의 어촌에는 노인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방제작업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름을 제거해 놓으면, 다음날 밀려오는 파도는 더 큰 기름 덩어리들을 내려놓고 갑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또 그 기름을 거둬들이고 닦아냅니다. 그 다음달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그러다가 일이 조금 일찍 끝나는 어떤 날은 이웃마을로 달려가 또 함께 기름을 걷어냅니다. 고되고 고된 일의 연속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기름과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앞으로 살아 생전에 다시는 갯일을 하지 못할 노인분들도 계시고, 다시는 갯벌에서 거저 얻어온 싱싱한 조개와 굴 등을 드셔보지 못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저를 보며 너무나 지저분해서 찍지 말라시는 그들의 얼굴에 아직은 웃음이 있습니다. 이웃 마을에서 달려와 준 것이 고마워 손 붙잡으며 인사하는 그분들의 얼굴에도 아직은 웃음이 있습니다. 아무 연고지도 없는데 새벽부터 달려와 하루 종일 함께 기름을 제거해주는 봉사자들을 향한 그분들의 얼굴에는 아직 더 환한 웃음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눈물겨운 웃음을 보면서 하루속히 기름이 제거되고, 다시 풍성한 바다 선물을 누리며 넉넉한 인심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서해바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네, 그날이 꼭 올 것입니다. 이미 이 고통을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희망이 현실이 될 날이 속히 오리라 믿습니다.

글∙사진=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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