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성희 씨를 처음 보았을 때 당연히 보통 가정의 ‘~의 아내’로 여겼다. 상냥하고 예쁜 성희 씨. 그녀와 가까워지며 싱글맘인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궁금함이 올라왔다. 단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여성으로서 느껴지는 연민이었고, 무엇인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끝자락에 있는 한국 가정에서 ‘벽’같이 느껴지는 상황을 박차고 나온 만용이었을지, 아님 정말 견딜 수 없는 ‘악’으로부터 빠져나온 것일지.
싱글 맘을 대하는 데에 이만큼 여지가 생기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 속 여러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목숨보다 더 중했던 삶의 틀(?)
오래전 성희 씨 나이였던 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들은 지, 1년 만에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70대의 건강한 부모 밑에서 수술이나 입원을 모르고 살아온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 나라에 나가 사는 가족들에게 병이 깊다는 말을 숨긴 그 남편은 치료 절차를 대충 보고했고 뒤늦게 모인 가족들은 너무도 힘없이 마지막을 보게 된 것이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 관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가족들 역시 주저앉았다가 분노로 대들었다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밀려온 죽음을 치러내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암 말기가 되도록 그토록 몰랐을까?”
언니는 어려서부터 잘 참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에 문제를 내지 않는 순둥이였고,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하며 아프다고 결석하는 일도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언니는 남편과의 문제를 혼자 참으며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견디어내다 병을 얻은 것으로 보였다. 몸이 불편해도 별 말 없이 마지막이 되도록 참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가족들은 뒤늦게야 이런 사실을 알고 “차라리 남편과 헤어졌더라면~”하는 말들을 하게 되었다.

이번 결혼이 마지막이 되길
이런 일도 있었다. 영국에서 초등학생 자녀의 엄마들과 기도모임을 할 때다. 신실하고 모범이 되는 한 엄마가 “시아버지가 세 번째 결혼식을 하신다”는 거였다.
듣는 사람들은 그런 가정사에 놀라 선뜻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는 담담히 상황을 설명하며 “이번이 마지막 결혼이 되게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감정을 섞지 않고 적절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가 아름다워 보였다. 함께 한 구성원들도 그 이상의 토를 달지 않고 담백하게 기도한 그날, 성숙한 태도는 저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토요일, 세 딸에게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똑같이 입혀 조용히 결혼식에 가는 모습이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싱글 맘 마음 헤아리기
성희 씨 얘기로 돌아온다. 사이가 가까워지자 성희 씨는 결혼을 서둘러 했던 것을 안타까워하며 일종의 도피였음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사람 보는 눈을 갖기 전에 ‘잘해주는 사람’에게 무작정 끌린 것, 그것이면 모든 삶이 이뤄져 나갈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이제 성희 씨는 그러한 감정들을 좀 다스릴 수 있음이 다행이라고 하며 아이와 편안히 살아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아요.” 사람들은 이 말을 가볍고 평범하게들 하지만, 이 구도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의아해하는 이목을 안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세워가느라 애쓰며 산다. 가까이서 보게 되는 싱글 맘들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며 안아주기로 마음먹는다.

전영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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