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게 전해진 귤 하나, 생명을 살리다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합니다. 가장 공식적인 호칭은 극단 ‘배우는 사람’ 대표겠네요.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불러주는 호칭은 따로 있습니다. 귤청년, 귤아티스트, 귤쌤. 하나 같이 ‘귤’이 들어가니 궁금하시지요?
시작은 간단합니다. 아는 동생이 아파 병문안을 가게 되었고, 귤이 먹고 싶다고 해 워낙에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니 그림을 그려서 가져가야 겠다 싶었지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유성 펜으로 여러 얼굴을 그려 선물했더니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
문득 그전부터 만나 뵙는 노숙자 아버지들께도 드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서울역에 갔는데 한 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분에게 드린 한 개의 귤.
“너 누군데 나한테 이런 걸 주는 거야?”
갑자기 소리 없이 우시더라고요. 왠지 안아드려야 할 것 같아서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오늘따라 내가 짐승인가, 밥만 축내는 짐승인가 싶어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말은 제 인생을 또 한 번 바꾸었습니다.
“선물은 사람한테 주는 건데, 그럼 나도 사람인가? 그럼 살아야 겠네….”
귤 하나가 사람을 살린 거예요. 그 이후로 전 귤에 그림을 그려 나눕니다. ‘예수 믿는 청년, 김건희’라는 이름 하나만 소개하고요. 그러고 보니 제가 궁극적으로 불리고 싶은 호칭은 이거네요. ‘예수 믿는 청년’ 말입니다.

귤 하나로 시작된 만남
지난 2012년 겨울 지하철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김건희 씨(34·광명 우리교회)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한사람이 점차 선로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를 붙잡고 귤 하나를 선물했다.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귤이었다. 죽으려고 지하철 선로를 몇 번이나 서성이던 노숙인은 그날 김건희 씨 품에서 살아야겠다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건희 씨는 귤에 캐리커처를 그려 사람들과 나눈다. 노숙인, 보육원, 소년원생 등 그렇게 나누며 만난 사람만 6만 명이 넘는다.
“1년에 귤 값이 한 천만원 들어가는 것 같아요. 겨울에는 괜찮은데 여름 같은 때는 하나님께 솔직히 부담스럽다는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귤 값이 사람 목숨 보다 더 비싸니?’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는 그냥 군 말 없이 해요. 하하.”
배우 생활과 교회와 학교, 기업 등에서 모노드라마 형식의 강연을 통해 얻게 되는 수입을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그려진 귤을 받으시면 모두들 행복해하세요. 한 5분 정도 걸리는 그림을 그리며 그분의 이야기를 묻지요. 놀라운 것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았는데 물어봐주니 고맙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어요.”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귤을 선물하니, 사람들도 마음 문을 여는 것이다. 그의 페이스북 등 SNS에는 그렇게 만난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찾아와 글을 남긴다.

삶 속에서 이야기하다
김건희 씨의 일상에는 ‘귤 아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밤중에는 달동네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동네 골목을 다니며 돕기도 한다. 지금은 그 일을 눈여겨보던 동네 청년들이 대신 하겠다고 나섰다. 이름 하여 ‘당신이 잠든 사이에’ 프로젝트. 청소년들에게 재능기부를 통해 연기수업을 해주기도 하고, 교회를 가기 힘든 형편의 할머니와 전철역에서 쭈그리고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구토를 한 청년의 오물을 맨손으로 치워주고 위로하다 그 이야기가 방송에 미담으로 실리기도 하고. 또한 길을 지나다 신발이 없는 노숙인을 보면 바로 벗어서 신겨준다. 잠깐이라도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 하나 때문에 벗어준 신발은 셀 수도 없다.
“한 번은 식당에서 나오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술에 취해 맨발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신발을 신겨드리고 댁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자꾸만 부엌에서 칼 좀 갖다달라고 우시더군요.”
그때는 건희 씨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마음의 어려움으로 진행된 탈모까지 있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데, 죽겠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몰라 모자를 휙 벗으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보다 머리숱도 많으시면서 왜 죽을라꼬 하시닙꺼!”
웃기려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 할아버지가 웃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자 안 써요. 이 대머리가 사람 살리는 대머리더라고요” 웃으며 말하는 그는 “그 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단점이라는 것이 사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점일 수 있다는 것을알게 되었어요”라고 덧붙인다.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가계 빚을 갚기 위해 멀리 일하러 떠나셔야 했다. 형과 함께 할머니 집에 꽤 오랫동안 맡겨졌는데, 무속인이셨던 할머니 반대를 무릅 쓰고 다녔던 교회, 그리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 그러나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에게 아버지셨고, 어머니셨다.
“착한 일을 한다 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동생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사실 그냥 행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강연에서 만난 한 학생은 옷자락을 붙들고 그냥 울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울음이 그친 후 말을 하겠다는 아이를 마냥 기다려줬다. 그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에 좋은 어른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였다.
“복음을 전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물어봐요. 당신 사는 것을 보니 예수가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사느냐고. 예수님과 진짜 사랑하면서 살면 그냥 사람들이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생각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불만만 가지고 있으면 도움을 받아야 할 누군가는 소리 없이 죽어갑니다. 불만족해하는 그 힘을 주위를 돌아보는데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불만을 뒤집으면 운동이 되지 않을까요. 에너지 방향을 바꾸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됩니다”라고 전했다.
김건희 씨에게 귤을 선물 받는 이들은 왜 그렇게 행복해하는 걸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귤’을 받고는 자신도 역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게 돼서 그런 걸까.
“모두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순간 하나님께서 그동안 저를 지키시고 기르셨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뭘 해야 될지 아는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는 그런 분과 함께 하는 진행형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이 제 편이고, 저도 여러분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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