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천봉산 골짜기에 흰 눈이 내리고 있다. 흩날리는 눈발이 남녘의 따사로운 햇살과 어우러지면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최근 한·중 FTA체결로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는 우울한 상황이다. 농산물 저가 공세로 농촌이 무너지면 식량 주권을 잃는다.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는 유전자 조작 종자(GMO)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최근 모 공영방송에서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부끄러운 민낯인 농민, 공무원, 유기농품질 인증기관, 농자재 회사가 ‘죽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매일 먹는 식량을 정직하게 생산하지 않는 불신사회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기 어렵다.

좋은 먹거리, 상생으로 이어져
요즘 병원이나 식당에 납품되는 김치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다. 저렴한 가격에 납품이 가능한 것은 대부분 중국산 배추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배추는 대개의 경우 비료와 농약으로 대량 재배하는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아무리 저렴해도 중국산 김치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작년 지역 우수농가들과 협력하여 절임배추를 도시민들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벌였다. 먼저 여름에 배추를 친환경적으로 재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 퇴비로 땅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0여 일 동안 전개했던 절임배추 사업을 마감하는 날, 참여한 이들 모두가 모였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격려와 내년을 대비해 보완점을 나누고, 배추 납품과 작업량에 따라 수익을 분배했다. 그런데 배추 생산자와 작업자 일동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하여 지역 내 다문화 가족과 마을 노약자들을 위해 소정의 기금을 출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눈길을 헤치며 배추 밭 관리를 하고, 새벽같이 나와서 시린 손을 부비며 어렵게 번 소득을 더욱 아름다운 일에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부에 나서겠다는 ‘농심’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하였다. 진정 ‘상생의 정신’이 없었다면 산골 오지에서 지금의 결과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 소중히 여기는 가치 회복해야
이 일을 한 이유는 분명했다. 땅을 살리고, 믿을만한 먹을거리를 생산하여 도시민들에게 제공하고, 농·산촌에는 농한기에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현재 농촌은 노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손이 많이 가는 친환경 농업을 이루는 것은 녹록치 않다. 정성을 다해 생산한다 해도 판로 확보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이 문제를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이런 일이 정착될 수 있도록 도시교회들이 농·산촌교회에 농토를 구입하여 친환경농업을 하도록 기반 조성을 해주고, 안정적인 직거래를 통해 생산된 농산물을 소화해주어야 한다. 공부에 찌든 주일학생을 농촌교회로 가족 단위로 보내 자연을 체험하도록 하며, 도시교회의 은퇴자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제2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농간에 협력과 교류가 일어나야 한다.
흔들리고 있는 도시의 한국교회는 생명의 기반이 되는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땅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땅에서 도시문명병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이제 상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영혼과 육체, 사람과 사람, 도시와 농촌, 하늘과 땅, 종교와 사회, 국가와 지구 환경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다. 이렇게 조성된 생명과 평화의 가치는 정치, 경제, 교육, 세대, 지역, 남북, 환경 등 각 분야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극복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올해가 상생의 대한민국 공동체를 함께 건설해 나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이박행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두레공동체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다가, 전남 보성 천봉산 자락에 들어가 점점 늘어가는 암환우들을 돌보는 전인치유센터를 아름답게 세워 운영하면서 기독교환경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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