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지나간다. 우리의 남은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설사 오십년 백년을 더 산다 하더라도 금방 지나간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날을 준비하는 길은 바로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란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앞을 바로 갈 수 없다. 하루, 혹은 일주일 정도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자. 근신하며 내 모습을 살피자.
감사할 분들을 찾아 감사를 드리자. 특별히 금년은 해가 지나기 전에 고마운 목사님들을 찾아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다.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나는 요만큼이라도 안 되었을 것이다.
▲ 동강가의 조그만 시골 교회, 대부분이 노인들인 그 교회를 담임하는 김 목사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담임하던 교회가 어렵다고 부근의 다른 교회와 합치고 자기는 영월 동강으로 들어갔다. 선택의 길목마다 손해 보는 길을 택하며 자기의 이해타산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그 목사님이 참 좋다.
▲ 어릴 때부터 조울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목회의 길을 꿋꿋이 걷고 있는 현 목사는 자기 속의 그 무엇과 싸우는 모습이 간혹 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정신적 고통에게 지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승화시켜, 정신장애우들의 치유와 회복과 자활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얼마나 하나님에게 매달렸으면 집요하게 자기를 공격하고 좌절시키려는 내면의 그 무엇을 내쳐버릴 수 있을까.
▲ 원로목사 부부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의 부목사로 제2의 정규인생을 멋지게 사시는 80대 중반의 나 목사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넘쳐나는 분이다. 보통 말로, 참으로 덕스러운 분이다. 이 어른을 뵈면, ‘아, 저래야 되는데…’ 싶지만 내 속에 굳어진 딱딱함이 풀리기가 쉽지 않다. 저 분은 속도 없으신가 했는데, 언젠가 입장이 아주 난처한 상황의 일처리를 강단 있게, 경우에 맞게 진행하셔서 외유내강(外柔內剛) 하시구나 싶었다.
▲ 아프리카와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반평생을 보낸 김 목사는 자기가 해외선교에서 이룬 것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선교사역을 마치고는 권력이나 돈을 멀리하며 깊은 시골에 살고 있다. 그는 선교지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자신을 향한 세 가지 질문이었다고 한다. △내가 참 복음 전도자인가? △진실로 때마다 모든 것을 포기했는가? △모든 동역자들과 아름답게 동역하고 있는가?
▲ 공단지역에서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회사 다니는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여 새 신자를 만들고 양육시키고 세우는데 온 힘을 쏟는 이 목사는 젊은 신자들이 80~90% 되는, 활력 넘치는 교회를 이끌고 있다. 설교 말씀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예화 없이 성경말씀으로만 채워 전한다. 예수 모르던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금방 예수에게 빠지게 만드는지 신기할 정도다.
▲ 강원도 단강가의 조그만 교회에서 시골 분들과 친교를 맺으며, 예수 향기를 품었던 한 목사는 아름다운 글도 많이 남겼지만 “거목이 되기보다는 거름이 되자”며 살아간다. 이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일이 생기면 교회로 찾아오는 이웃이 되었다.
▲ 안정된 환경을 뿌리치고 캄보디아에 가서 어린이전도를 하던 중 암에 걸려 수술 후 다 낫기도 전에 다시 척박한 그 곳으로 돌아가 미련스럽게 어린이전도에 모든 것을 바쳤다가 끝내 쓰러진 이 목사. 얼마나 어린이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랐으면 자기 목숨을 선교와 맞바꾸었을까. 그의 아내 공선교사도 남편이 못다 한 사역을 이어 하겠다고 아픈 몸으로 남의 나라에서 저토록 어린이선교와 하나님나라 확장에 목매고 있으니 바보가 아닐까.
▲ 장교로 제대하여 13평 아파트에서 교회를 개척한 한 목사는 전도의 ‘도사견’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물었다 하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매주 삼각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뽑기라도 하듯 철야 기도하던 목사님에게 어느 날 내가 붙잡혔다. 인생의 가장 처절하던 시절, 계속된 실패로 앞이 안 보이고 캄캄하던 때, 모두가 떠나가던 그 때 하나님이 빛으로 찾아오셔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길(道)이 되신 것은 잃은 영혼을 살리겠다는 한목사의 기도 응답이리라. 자주 연락을 못 드려도 목사님을 어찌 잊으랴! 예수님이 ‘이 사람이야말로 간사한 것이 없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다’고 하신 말씀은 이분들에게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목사님,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있다는 거 모르셨지요?

김정삼
법조인으로서 이웃의 아픔에 눈을 두는 그리스도인.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바름과 옳음을 생각하며, 윤리 환경 봉사 관련 NGO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원주제일감리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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