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집을 가출한 지 며칠, 오늘은 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나가다 순댓국집에 붙어있는 한 팻말을 보았다. 누군가 미리 돈을 내고 갔으니 들어와 밥을 먹어도 좋다는. 쭈뼛쭈뼛 들어가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밥이 들어가니 가슴이 뜨끈해졌다. 엄마 생각도 나고… ‘집에 들어가야겠구나’.
며칠 후 순댓국집을 방문한 아이의 엄마는 순댓국 몇 그릇 값을 미리 치르고 주인에게 거듭 인사를 하며 돌아갔다. 또 하나의 국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라며. 누군가 ‘미리’ 차려놓은 식탁으로 위로가 전달되며, 나눔의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 그릇을 먹고 두 그릇 값을 지불하여 얼굴도 모르는 뒷사람의 음식값을 먼저 내는 ‘미리내가게’가 330여 개로 증가했다. 2013년 4월에 시작했으니까 1년 6개월만의 일이다. 미리내운동에 참여하는 가게는 식당이 많긴 하지만 유흥업소를 뺀 다양한 업종에 고루 분포돼 있으며 활동영역 또한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점주들부터 ‘미리내’
운동이 확산되면서 바쁘고 어깨가 무거워진 사람들은 미리내운동본부의 수뇌부가 아닐까. 미리내가게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미리내운동의 행동주체는 사실상 점주들입니다. 그분들이 운동의 의미를 잘 숙지하고 서비스하고 활동해야만 성공할 수 있거든요. 백 퍼센트 자발적인 운동을 본부에서 관리를 할 수 있는 차원도 아니고요.” 김기성 사무국장(미리내운동본부 www.mirinae.so)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내운동의 첫 번째 변화주자도 점주들이다.
“우리 동네 착한 가게가 미리내가게로 선정이 된다 해서 본부에서 뭔가를 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주들은 자비로 다섯 가지 물품을 구입해야 합니다. 팻말이나 현판, 모금함 등 미리내가게가 되기 위한 준비는 철저히 점주들의 몫이지요.”
그렇게 하는 데는 깊은 뜻이 있다. 멤버십과 책임의식, 그리고 미리내가게 점주로서의 자부심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저희는 미리내가게가 단순히 나눔을 실천하는 가게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리내가게가 있는 지역을 공동체로 생각할 때 그 공동체가 인정 넘치는 분위기가 되게끔 만드는 구심점이 되길 원하지요.”
그간의 노력으로 본부를 중심으로 한 점주들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리내운동은 더욱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해 서로 나누어 나가며 더욱 발전해가고 있다.

나눔을 넘어 의식개혁의 주체로 발돋움
미리내운동본부는 미리내가게를 중심으로 ‘다 먹자’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서울시의 3대 고민이 주차, 복지, 음식물쓰레기라고 하잖아요. 음식물을 남기는 건 우리의 오랜 관습인 체면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마지막 한 개 남았을 때 아무도 먹지 않는 것, 이제는 버려야 할 문화고, 문화를 바꾸려면 의식운동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결국 의식개혁이 되지 않으면 계속 골치를 앓아야 할 사회문제로 남게 되는 거죠. 미리 내는 것만 나눔이 아니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 또한 나눔이 아니겠습니까.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죠.”
김기성 사무국장은 중앙대 재학시절 기독학생연합회 선교부장을 맡아 방학 중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의식을 바꿔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진리였다. 그래서 미리내운동 역시 우리 각자의 의식개혁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나눔문화 확산 위한 크라우드펀드 조성
고려대와 이화여대생 40여 명이 미리내운동의 소셜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미리내가게가 원래의 취지대로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소리 없이 살펴보고, 미리내운동이 진정한 사회변혁운동이 되기 위한 파트너십을 발휘한다. 변화의 방향과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대학생들이기에 기대가 된다.
향후 우리 사회에 나눔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미리내운동본부는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www.wadiz.kr)에서 펀드를 조성 중이다.
“미리내가게를 발굴하고 오픈하는 데 사용하고, 펀드참여자들은 미리내가게의 제품을 받고 팔아서 수익을 남기는 형식이 될 겁니다. 펀딩 보다 보상이 더 커서 선순환되고 확산되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미리 낸다는 의미와 함께 은하수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기도 한 ‘미리내’운동이 우리 사회를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원영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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