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바로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이지요. 크리스마스 식탁 앞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가정을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며 성냥 한 개비씩을 태우며 자신을 달래야만 했던. 성냥팔이 소녀가 그날 그 식탁에 초대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번 특집은 그렇게 ‘창문 밖’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들을 위해 나눔의 식탁을 연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도시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 누군가의 식탁을 미리 마련해주는 ‘미리내운동’, 저소득층 아이들 무료 식탁교육을 하는 ‘반테이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육수를 끓여내는 ‘마창선 셰프’, 그리고 저 멀리 르완다에서 빵을 통해 함께 살아감을 이야기하는 ‘라즈만나’까지 풍성한 ‘식탁’을 차려 대접합니다. 이 ‘나눔의 식탁’이 계속 확대되길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따뜻한 한 끼가 새로운 삶의 디딤돌이 됩니다”

도시의 아침은 바쁘다. 끼니는 생각지도 못하고 시계를 보며 달려가는 남자, 머리를 감고 말리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자, 그들은 평범한 우리네의 모습이다. 그런 바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가끔, 아니 심심치 않게 노숙인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세상의 속도와는 상관없는 듯 차가운 지하철역 바닥에 박스 한 장을 깔고 누워있거나 깨어있어도 목적 없이 멍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내는 풍경을 응시한다. 혹시 그들을 보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기상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면 노숙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도심에서 노숙할 수밖에 없죠. 새벽같이 일어나 인력사무소에 가야 하거든요. 밖으로 보기에 노숙인 티가 나는 경우는 그 생활이 오래 된 거고요, 대부분은 노숙한 티를 내지 않고 더 말끔한 외모를 갖추려고 노력해요. 그 뿐인가요.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일을 하고 싶지만 못하는 거예요. 그날그날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한 달이면 며칠이나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새벽에 하루 일자리 찾아 나섰다 허탕치고 쓰러져 잠들었다가 남들 출근할 때 깨는 사람들, 그들이 노숙인이고 도시빈민이에요.” 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의 김현일 대표(사진). 그의 설명에 듣는 이의 마음이 시리다.

노숙의 경험이 노숙인사역자로
IMF시절 짧지만 노숙생활을 해보았다는 김현일 대표. 다행히 회복을 하고 어린이집 체육교사 겸 기사로 일을 할 때였다. 골목길을 차로 돌며 원생을 태우러 가는데 폐지 줍는 노인 몇 분이 리어카를 세워놓고 쭈그리고 앉아 뭔가 드시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전날 어느 집에서 배달해 먹고 내놓은 그릇의 남은 음식을 나누어 드시고 있었단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무작정 컵라면 다섯 개를 들고 노숙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제가 노숙인 사역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제 멘토가 두 분 계세요. 김형국 목사님(나들목교회)과 조영권 목사님(즐거운 휴카페)인데 두 분께 말씀을 드렸죠.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어야 하잖아요. 그런 교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랬더니 명쾌하게 답을 주셨어요. 네가 해.”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 일기를 쓰듯 소박하게 이야기를 써내려갔더니 교회의 젊은 부부가 라면 한 박스를 들고 왔고 이어 다른 부부도 합류했다. 그러더니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무엇을 도우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시작해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바하밥집’이다.

예수님의 ‘손님’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저녁 때, 토요일에는 점심 때 무료급식을 한다. 백 퍼센트 후원과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일주일에 7백 명이 넘는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예수님의 식탁에 초대된 주인공들이잖아요. 우리에겐 최고의 손님들이죠.”
김현일 대표를 비롯한 바하밥집의 스태프와 봉사자들의 마음가짐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손님’들이 다 알 리 만무하다.
모금을 맡고 있는 주신희 팀장에게 사역의 어려움을 묻자 가슴 아팠던 이야기로 답을 한다. “배식 받으려면 주로 한 시간씩 기다리시거든요. 그럴 때 대화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힘드시죠,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했더니 당신들이 기다리게 해놓고 밥을 주지 않아도 우리는 할 말 없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먹먹했어요.”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사랑하려면 더 넓고 더 깊은 사랑과 이해의 소유자가 되어야 함을 느꼈다고 한다.

밥집-주거공간-자활
지난 10월 바하밥집 옆에 ‘Cafe Brooks’가 문을 열었다. 모든 수익금을 바하밥집에 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서이다.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얻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좋다. 김현일 대표는 이와 함께 주거대책을 마련하고 이미 착수했다.
“자활만큼이나 중요한 게 주거공간이에요. 노숙인이 뭐겠어요. 저녁이 돼도 돌아갈 둥지가 없는 사람 아니겠어요. 우리 계획은 바하밥집을 중심으로 저렴하지만 안전한 주거공간을 마련해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나들목교회의 바나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한 바하밥집은 주거프로젝트로, 더 나아가 자활의 터전 ‘Cafe Brooks’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카페의 벽면에는 흡사 사진전인 듯 ‘손님’들의 모습이 걸려 있다. 손님들과 자원봉사자들 스스로가 휴대폰으로 찍은 작품들이다. 내년 초에는 작품전 도 열 계획이라고 김 대표는 상기되어 이야기한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주거에서 자활까지 어떤 이에게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문제, 51대 49로 풀자
“노숙인의 문제는 공동체적 시각으로 끌어안는다면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손가락을 쫙 펴보세요. 다섯 손가락 안에 네 개의 공간이 생기잖아요. 다섯 사람이 네 사람을 돌보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51대 49의 비밀이라고 표현하지요.”
김현일 대표의 해결책은 간단한 듯하지만 그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답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다섯 사람이 네 사람의 삶을 지원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아갈 만하지 않을까. 도시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안락한 잠자리 그리고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큼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을까 묵상하게 된다.

365명이 만든 아주 특별한 ‘하루를 쓰다’ 전시회

‘하루를 쓰다’는 4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한 융합 프로젝트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직접 쓴 숫자 캘리그라피를 모아 달력을 만들고, 전시회를 여는 것.
1월에는 바하밥집의 손님들과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한 해를 열었고, 2월은 외국인노동자들과 난민, 우리나라에 유학 온 외국인들이 참여했다. 3월에는 전시기획자와 SNS를 주고받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4월 예술인, 5월 어린이, 6월 탈북 새터민들, 7월은 평화를 위해 꿈꾸는 자들이면 누구든지 참여했다. 또한 8월은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9월 농촌 주민들, 10월 청계광장의 시민들이 참여했으며, 11월은 암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아픔을 이기며 ‘하루’를 썼다. 또한 12월은 다시 바하밥집의 손님들과 봉사자들이 써내려갔으며, 신영복 작가를 비롯해 많은 사회문화계 인사들도 참여했다.
“글씨는 한 사람의 지문과도 같잖아요. 고유하고 독특하죠. 바로 그 점을 하루의 소중함과 접목시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달력을 넘길 때마다 혹은 볼 때마다 내게 허락된 하루라는 시간에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방송과 에세이, 공연기획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온 경험을 살려 재능기부를 통해 ‘하루를 쓰다’를 내놓은 기획자 최성문 작가는 “기획하고 열 달 가까운 시간을 몸을 움직여 뛴 것은 저이지만 참여해주신 365명 이상의 모든 분들이 자신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는데 저를 비롯해서 참여한 모든 분들이 가장 먼저 혜택을 받은 거죠. 하루가 이렇게 소중하구나 새삼 느끼면서 행복했거든요”라고 전한다.
‘쓰다’의 의미는 특별하다. 글씨를 쓴다고 할 때도 사용하지만 ‘나눈다, 베푼다’고 할 때도 사용되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쓰다, 마음을 쓰다 등.
“전시회와 달력의 모든 수익금은 ‘바하밥집’을 위해 쓰일 거예요. 뭔가 돕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자 한 사람이, 혹은 일회성으로 돕는 것보다 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진정성을 담아낸 나눔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원영선 객원기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첫 직장을 광고대행사 대보기획에서 시작했다. 이후 방송작가로 변신, EBS, 기독교TV, KBS, CGN 등 일반과 교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베테랑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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