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을 떠난 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지만, 충만감과 평화로움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천상의 행복감은 아무나 넘보지 못 하게 구조적으로 막아놓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찬양과 예배를 통해 누리는 기쁨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가나안의 우상으로 가득한 세상의 속도와 규모에 기죽을 필요 없다. 저들은 빨리 달리지만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 한다. 저들은 많이 먹지만 결코 채워짐을 경험한 적이 없다. 행복의 진품은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이 칼럼의 양대 키워드는 언제나 ‘찬양’과 ‘행복’이다. 나는 이 두 단어를 조용히 발음할 때마다, 내 몸을 구성한 모든 세포들이 하나하나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이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통쾌하기 짝이 없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이젠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일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고, 이젠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불어 나는 너무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따스한 온천에 들어간 사람이 온기와 부력을 느끼듯, 사는 것이 온화하고 쉬워졌다. 영화 ‘괴물’의 첫 장면에서 송강호가 여학생 딸이 메고 있는 책가방을 손으로 받쳐 올리고 따라가듯,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의 역사가 늘 나와 함께 한다. 이 모든 것이 찬양을 축으로 삶을 구동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