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분명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에 틀림없는데 실제로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무엇에게 약탈당하고 있는가. 권태로워진 로마처럼, 마음 중심에 원형경기장을 만들어 수많은 검투사들을 투입해 보지만 끝이 너덜너덜 해진 오감회로는 좀체 짜릿한 전류를 발생하지 못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떠난 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지만, 충만감과 평화로움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천상의 행복감은 아무나 넘보지 못 하게 구조적으로 막아놓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찬양과 예배를 통해 누리는 기쁨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가나안의 우상으로 가득한 세상의 속도와 규모에 기죽을 필요 없다. 저들은 빨리 달리지만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 한다. 저들은 많이 먹지만 결코 채워짐을 경험한 적이 없다. 행복의 진품은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이 칼럼의 양대 키워드는 언제나 ‘찬양’과 ‘행복’이다. 나는 이 두 단어를 조용히 발음할 때마다, 내 몸을 구성한 모든 세포들이 하나하나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이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통쾌하기 짝이 없다.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이젠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일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고, 이젠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불어 나는 너무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따스한 온천에 들어간 사람이 온기와 부력을 느끼듯, 사는 것이 온화하고 쉬워졌다. 영화 ‘괴물’의 첫 장면에서 송강호가 여학생 딸이 메고 있는 책가방을 손으로 받쳐 올리고 따라가듯,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의 역사가 늘 나와 함께 한다. 이 모든 것이 찬양을 축으로 삶을 구동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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