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시대에 ‘쪽복음’을 선택한 이유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성경을 읽는 시대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이테크의 발달이 선물한 편리성에 수고로움을 조금 보태면 언제 어디서나 성경을 꺼내 읽을 수 있게 됐다. 적응 속도가 빠른 젊은 층의 경우, 가까운 날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향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협성대학교 캠퍼스에는 젊은 ‘권서(勸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복음서학회에서 활동 중인 학생들은 오늘도 ‘쪽복음’을 챙겨 들고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권서를 한다.
130년 전 신앙의 선조들이 갔던 길이다. 그들은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간벽촌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복음전도를 하며 성경을 권했다. 그런데 왜, 지금처럼 복음전도에의 접근성이 활짝 열려있는 시대에 권서를 택한 것일까.

성경, 많이 읽읍시다
“성경을 안 읽잖아요. 신앙서적은 즐겨 읽는 사람들이 정작 성경은 읽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거든요. 그런데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어요. 결국 말씀대로 산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는 거죠.”
학생들의 맨 앞에 서서 권서활동을 하고 있는 양재훈 교수(협성대학교 신학과)의 말이다. 교과서 보다 참고서에 집중하는 학생의 모양새가 떠오른다. 아무리 참고서가 용하다한들 교과서의 중요성에 비할까. 제자들이 성경을 많이 읽기를 원하는 양 교수는 권서의 방법을 택했다. 권서를 하려면 스스로 말씀을 많이 읽고 기도하며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많이 읽어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이고 읽은 만큼 안다고, 말씀이 필요할 때마다 성경구절이 저절로 떠오르죠. 저는 어려서 아버지 덕분에 성경을 많이 읽었어요.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상을 주셨거든요. 어려서 읽은 만화성경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의 부친은 1970년대 강원도 홍천과 춘천에서 목회하면서 권서활동을 하셨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이었다. 이해하기는커녕 힘들고 어려운 일을 왜 하시는지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한 아들은 아버지 보다 더 권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실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 발전의 숨은 공신이 바로 권서란 사실을 일찍이 가르쳐주신 아버지 덕분이다.

성경, 제대로 읽읍시다
“다음은 성경해석의 문제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주 위험해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성경을 읽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보편성 가운데 읽어야 해요. 이때 보편성이란 신앙고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석하는 걸 말하죠.”
양재훈 교수의 말은 어렵지만 곱씹어볼수록 옳은 얘기란 생각이 든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이나 틀 혹은 고백을 무시하면서 읽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앙공동체적 성경읽기’라고 표현해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자기스타일을 잃지 않고 또한 지체들이 조화를 이뤄가는 것. 그것은 성경을 많이 읽고 제대로 해석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양 교수의 강의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없다. 대신에 매 시간 성경시험이 있을 뿐이다. 이때 성경시험은 감리교단에서 발행한 문제집에 근거한다. 오류는 철저히 배제하면서 각자 다른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므로 양 교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학교 어디서나 문제집을 펴놓고 말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성경에 빠져들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을까.

열매는 하나님의 몫
시간을 정해놓고 동시에 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이 각자 다른 요일 다른 시간에 권서를 한다. 이유는 권서활동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양 교수는 “신학생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 기본을 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경험상 잘 알지 않는가. 당장 큰 열매가 없어도 상관하지 않고 꿋꿋하게 권서의 길을 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