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해서 분가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지리적으로 함께 할 수 없어서 싱글로 각자 살림을 꾸려가는 아이들 이야기다.
학교를 다닐 때는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학교와 친구의 울타리가 있었지만 졸업을 하니 모든 게 달라졌다. 각자 일을 찾아 흩어지고 그곳에 남은 인경 씨 딸은 직장인이 되어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월세도 줄이고 말동무도 할 생각으로 룸메이트를 구해 집을 얻었는데, 그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출, 퇴근 시간을 비롯해 생활양식이 다른 룸메이트와 한참을 부대끼더니 결국은 원룸에서 혼자 살아야겠다고 했다.
인경 씨는 “그러렴” 하고 허락했다. 이사하니 소파가 있어야 된다고 하고 청소기도 샀다는 얘길 들으면서 인경 씨는 ‘알아서 잘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런저런 일로 가보지 못하니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온 것이었다.
3년 만에 딸의 집을 방문하며 인경 씨는 자신이 한 번도 이런 생활을 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딸은 의식주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어디 물질적인 것뿐인가, 시간과 에너지, 정서적인 면 모두를 스스로 책임지고 조절해야 한다.

친구의 자취방 연상
문득 대학 다닐 때 자취하던 친구 생각이 났다.
자물쇠를 따고 작은 문을 열면 부엌을 거쳐 방이 있었다. 창문이 있는 작은 방에는 지퍼가 달린 비키니 옷장과 책상 겸 밥상이 놓여 있고 성악을 하던 친구에게 중요한 반짝이 드레스가 두어 벌 길게 걸려 있었다.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며 둘러볼 새 그 친구는 상 위에 있던 것들을 치우며 오늘은 여기서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밥은 어디서 나올까?’ 어정쩡하게 앉아 신문, 악보, 책들을 집어드는데, 친구는 냄비에 밥을 해서 밑반찬 두어 가지와 함께 들고 왔다. 김에 싸서 이렇게 먹는 거라며.
밤에 혼자 안 무섭냐고 했더니 누가 찾아오는 게 더 무섭다고 했다. 이사하면 벽에 못 박고 짐 옮기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다 하는 수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한 것은 ‘그래서 별 마음에 없는 남학생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며 관계를 유지했구나’ 싶었다.

자유를 어떻게 채울까
목회하는 부모를 어려서부터 보아온 인경 씨 아이들은 당장 필요한 것은 얘기할 수 있었지만 외로움 등의 정서적인 보살핌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먼 이주를 해오며 유학 아닌 유학을 하느라 사춘기부터 떨어져 지내온 아이들을 이젠 다 컸다고 밀어 둘 수 있는 건지….
인경 씨는 고단한 딸이 베란다에 토마토와 고추를 심고 시중하는 걸 보며 마음의 빈 공간을 이렇게 달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말릴 수도 없었다.
젊음, 많은 것을 경험하려는 욕구, 자유를 비슷하게 지내온 어른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너무 빨리 결론에 가까운 말들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감사하며 살아라. 늘 기도하며 주일 잘 지키고 건강하게.


엄마의 참회
와서 보니 통화나 메시지로 오간 말들은 일어나는 일 위주였고 사건 중심이었다. 출장, 성과급, 아파서 늦게 갔어, 낚시해서 매운탕 끓여, 공부하고 있어 등등. 그러나 삶은 나타나는 일 외에 그 속에 흐르는 마음이 있지 않는가.
‘외로움’이었다. 무엇을 위해 왜 혼자서 멀리 떨어져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것을 20대 중반 젊은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에는 현실이 무거운 것이었다. 가족 모두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 가운데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의 공간, 혼자의 시간.
인경 씨는 그것을 생각지 못한 엄마로서 마음에 미안함이 솟구쳤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친구들 초대도 그렇게 많이 했었구나. 그러면서 사람들도 배웠겠구나.
그래도 엄마는 이말 밖에 할 게 없다. 주님 붙잡고 사는 길 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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