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가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만큼 뿌듯하고 벅찬 일이 또 있을까. 어려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돌보다가 성장한 다음에는 뒤에서 바라만 보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다. 부모보다 더 훌륭해지라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뒷바라지한 공부….

딸의 진로 선언
순영 씨는 그렇게 키운 딸이 진로 선택을 앞두고 하는 말에 혼란이 왔다. 내 이십 대보다 더 예쁘고 많이 배운 애가 큰 결핍 없이 커 와서인지 순수한, 그것도 너무 순진한 말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나는 아무래도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잘 안 보이는 데서 봉사하는 그런 일이요.”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아프리카나 북한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좀 됐어요. 그래서 배우자도 그런 사고와 맞는 사람이어야 할 거 같아요.”
‘아…’ 순영 씨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며 순간 머리가 좀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그동안 언어 연수에, 유학에, 힘들여 학비 댄 게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순영 씨는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정리해 보았다.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 수입 좋은 번듯한 커리어 우먼, 영악하고 시대에 맞는 유능한 사윗감, 윤택한 가정…’
순간 순영 씨는 딸이 자신보다 더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한 구석이 서운했다. 남들은 멋도 잘 부리고 자연스럽게 사회에 적응해 가던데….
그날 밤, 순영 씨는 남편과 얘기하며 딸의 비현실적인 순진함을 꼬집었다.
“놀랄 말을 하네요. 북한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남편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힘을 다해 여기까지 뒷바라지 해온 거구, 이제부터는 성인으로서 그 애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때가 온 거 아니겠어?”
“지금은 순수한 마음에 저런 생각을 하지만 나중에 남들과 섰을 때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딸은 어려서부터 일을 맡기면 어려워도 군소리 없이 잘해내는 책임감 있고 봉사정신이 있는 아이였다.

“북한에 대해 공부할래요”
다음 날, 딸은 ‘기부’를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석한다며 일찍 서둘러 나갔다. 엄마한테 진로를 말했으니 이제부터는 그런 삶을 시작하겠다며.
순영 씨는 온종일 혼잣말을 했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아닌가. 고아와 과부를 돕고 가난한 자, 소외된 곳을 돌보는 건 주님 말씀에 맞는 거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북한이야. 그 말도 안 되는 곳.”
순영 씨가 주님 앞에 머리 숙이자 마치 주님이 아신다는 듯 위로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잘 키웠다. 애 많이 썼다.”
차마 말하지 못했으나 딸이 이 세대에 맞춰 영악하게 살기를 바랐던 자신의 마음이 비춰진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 엄마보다 더 컸구나!”

전영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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