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캄캄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 먹먹했다. 사실이 아니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국민은 진도 앞바다만 바라봤다. 아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배에 갇혔고, 우리의 가족들이 그 차가운 바다 속에 꼼짝없이 갇혔으니.
실종자가 구조자로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며 마음 졸이고 지켜봤지만 첫날 사고 직후 구조된 이들을 제외하고 추가 구조자는 더 없었다. 새로운 소식은 없이 차가운 주검만 늘어날 때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이 함께 울고 또 울었다. 그날 이후 진도 앞바다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참담함과 허탈함으로 울고 또 울어야 했다.
나도 울었다. 기성세대인 내 잘못이라고 강단에서 무릎도 꿇었다. 촛불을 들고 살아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힘껏 성금도 모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눈물조차 메마른 채 피멍든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부모들 때문이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힘없이 쓰러져 있는 가족들 때문이었다. 그분들로 인한 안타까움이 전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팠다.

눈물은 산 자의 몫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눈물은 산 자의 몫이다. 그런데 산 자에게는 또 다른 몫이 있다. 바로 삶이다. 죽음을 이기고 산 자로서 꿋꿋이 살아야 한다. 먼저 간 이들의 몫까지 두 배로 더 살아야 한다. 더 이상 절망의 바다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육체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의 죽음이다. 마음이 죽으면 살아 있다고 하나 산 것이 아니다. 슬픔은 절망을, 절망은 분노를, 분노는 자책과 정죄를 낳는다. 자녀를 잃은 슬픔이 자기 자신까지 잃는 자책과 죄책감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 일어서야 한다. 힘을 내야 한다. 상실의 바다를 뒤로 하고 소망의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사무엘상 16:1)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 생의 의지를 불살라야 한다.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사무엘상 30:6)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내야 한다.

희망을 나눌 때
전 국민이 도와야 한다. 보듬어 안고 위로하는 것이다. 눈물 머금은 아픈 마음을, 공감하는 마음을 담아 붙들어 주는 것이다. 가슴 깊이 꼭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살 수 있는 소망을 주는 것이다. 다시 삶과 마주할 수 있도록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동안 슬픔을 나누었다면 이제는 희망을 나눌 때이다.
눈물을 닦고 미래를 내다볼 때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새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절제하고 희망의 기사를 써야 한다. 종교인은 위로의 빛, 살리는 빛, 희망의 빛을 높이 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쉽게 쓰러져간 어린 영혼들에 대한 도리다.
온 국민이 손에 손을 잡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자. 손에 손을 잡고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게 만들자. 모두가 잘 사는, 특히 청소년이 믿고 사는 대한민국, 모두를 잘 살게 하는 대한민국을 세워가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고난도 이겨냈다. 혹독한 일본 강점기를 끝내 극복하고 광복의 빛을 불러왔으며 동족상잔의 참변인 6ㆍ25전쟁의 위기도 극복했다. 이런 우리 민족이 하지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고난 속에서 희망을 피워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다시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자.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지금까지 일관되게 성경적 효 운동을 전개해왔다. 재단법인 성산청소년효재단 이사장이자 학교법인 성산학원 이사장이고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이다. 사회복지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노인복지증진의 공로로 201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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