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가져간 공산군
“충청도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던 우리는 피난 갈 생각도 할 틈 없이 공산군이 쳐들어왔어요. 얼굴은 어린데 거렁뱅이 같은 공산군들이 밥을 내 놓으라 해서 어른들이 차려주면 정신없이 먹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우릴 쳐다보고 같이 먹자고 하면 도망가서 숨어 지켜보곤 했지요.”
올해 75세가 되신 강 할머니의 전쟁 기억이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후퇴하면서 이번엔 있는 걸 다 내놓으라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보다시피 남은 게 뭐가 있느냐’며 호통을 치셨지요.”
“그러자 대장으로 보이는 군인이 어린애를 붙잡아 와서는 데려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말없이 일어나시더니 소를 끌어 오셨지요.
‘가져가슈.’ ‘우린 소 없으면 안 되는데…’
조그만 소리로 말하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어요.
다시 얼마가 지나자 이번엔 태극기를 앞세운 국군이 들어왔어요. 모두들 기뻐 만세를 부르며 날뛰었지요.
그런데 다음 날부터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대고 쑥덕거리기 시작했어요. ‘저 집은 공산당한테 밥도 주고 소도 내주었다’구요.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잘못을 비셨어요.
전쟁 때 얘기를 어떻게 다 하겠어요? 어린 마음에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성골 영희 이야기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아내와 두 딸을 전성골이라는 촌에 피난시키고 전쟁터로 나갔다. 20대의 젊은 애기 엄마는 작은 애에게 젖을 물리고 세 살짜리 큰애는 혼자 나가 놀라고 했다.
낯선 빈 마을서 아버지마저 안보이자 큰애가 그나마 보리죽도 안 먹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줄만한 게 따로 있을 리 없는 전시 상황, 아이는 눕고 말았다.
팔 다리는 축 늘어져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데 엄마는 해줄게 없었다. 미음을 조금씩 떠먹이며 말을 시켜보지만 눈동자에 힘도 없어지고 있었다.
방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저녁도 그렇게 저물어 막 촛불을 켜고 있을 때였다.
“영희야!” 아버지의 쇠 조각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영희야!”
엄마가 젖 물린 아이와 함께 일어나느라 둔하게 움직일 새 큰 애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여보, 애가 일어났네요.”
“무슨 소리야.”
“몇 주째 못 일어났었어요.”
“뭐라고?”
엄마는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영희는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는 과자와 초콜릿을 막 받아먹었다. 그걸로 병 아닌 병은 끝이었다.
영희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 실어증에라도 걸렸던 걸까. 그보다는 영양실조로 기운을 잃었다가 반가운 아버지 소리에 벌떡 힘이 난건가.
둘 다일 듯싶다.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붙어 있으니 큰 애는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본 것이고.
이후 영희는 지리한 전쟁이 마치기까지 잘 견뎌내고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영혜 객원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