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한아장학재단 설립한 이충선 여사

“후손에게 유형의 재산을 남기는 것은 그들의 뼈와 살을 무르게 하는 독(毒)입니다. 타고난 유전인자를 바꿔줄 수는 없지만 무형의 가치를 유산으로 남겨줄 때 그 선한 영향력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유산이 됩니다.”
5년 전, 재산을 바쳐 캘리포니아에서 한아장학재단(Suhn & Hanah Park Foundation)을 설립한 미국 이민 1세대 이충선 이사장(80세, 토렌스제일장로교회 권사)의 고백이다. 이 이사장은 유형무형의 재산을 누구에겐가 의미있게 나누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지금 저개발국가에서 온 12명을 이화대학교 글로벌 여성인재육성 프로그램 EGPP(Ewha Global Patnership Program)을 통해 키우고 있다.
이 이사장이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다.
“여러 나라 선교지를 방문하며 가장 안타깝게 여긴 것은, 그들에게 지도자가 없다는 거였어요. 가난문제는 둘째지요.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회생 능력이 없을 때, 한국에 와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나 외국원조로 일어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지도자를 세워주는 데 제 모든 역량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이 이사장은 6·25전쟁 통에 피난지 부산에서 대학에 입학해 전쟁이 끝나고 서울에서 졸업했기 때문에 “전쟁세대인 우리가 이 일을 하지 못하면 누가 할 수 있겠나? 우리가 모델을 보여주고 가야 한다”며,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한다.
그가 여성인재육성에 뜻을 세운 데에는 선교지에서 느낀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

“소 팔듯 아이를 팔다니…”
2007년 선교지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을 때였다. 직업훈련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국 선교사의 안내를 받으며 선교지 이야기를 듣다가 충격을 받았다. 부모가 아이들을 교육하기는커녕, 아이가 열 살이 넘어 힘깨나 쓸 수 있는 때가 되면 소장수가 소를 팔듯이 아이를 그렇게 팔아넘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선교사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 그 아이들과 선교사의 이야기가 뇌리를 맴돌아 견딜 수가 없었다. 인신매매. 그것도 부모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이 미개함을 깨울 수 있는 길은 ‘교육’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지도자가 없어서 아이를 소처럼 파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구나. 그들의 가난과 무지는 지도자가 없고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저개발국가에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 내 마지막 사명이다’라고 결심하게 됐다.

성공한 삶 어떻게 나눌까
1973년 마흔 나이에 아이들(1남1녀)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받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이민을 결행했다. 이화대학 출신 약사에게 이민정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40여 년의 외국생활에서 그가 겪은 풍상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는 “좋지 않은 기억은 잊는 습관”이 있어서 멈추거나 물러나지 않고 진취적인 자세로 앞으로만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이민 1세대’로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로 그의 삶의 향기를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 생각보다 넘치게 주셨어요. 저는 그저 24시간이 짧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은 교회중심 생활을 하게 했어요. 제가 기독교학교를 다닌 덕분에 교회생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교회만큼 안전지대가 없잖아요.”
그에게는 미국 사회에서 반듯하게 자란 1남1녀와 세 손주가 있다. 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어떤 방법으로 남겨줄까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후손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독이 되지 않고 영원한 재산을 남겨주는 방법, 바로 ‘나누고 섬기는’ 일 중에서 저개발국에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유산으로 남기기로 작정했다.

“할머니의 유산이란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받은 엄마의 영감을 자녀들에게 전했다. 자녀들은 쾌히 그 결정을 존중했고, 앞으로 이 장학사업에 동참하겠다는 보너스까지 선물했다. 할머니는 세 손주들 이름으로도 장학생을 결연하여 키우고 있다.
“이것이 할머니가 주는 유산이자 선물이다. 너희들은 아빠가 키워주는데 이 아이들은 아빠에게 도움을 받지 못한단다.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자.”
이렇게 가르친다. 이보다 더 소중한 유산은 없다고 믿는 할머니는 재산을 다 쏟아내면서도 가슴이 벅차다.
이충선 이사장은 기도한다. 이 장학생들 속에서 반기문, 오바마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기를. ‘목재는 10년, 인재는 100년’이라는 데, 100개의 씨앗을 심어 나라를 짊어질 대들보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그 공동체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까, 꿈꾸며 행복해 한다. 3년 전부터 이화대학교의 EGPP와 손잡고 개발도상국의 여성리더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서 장학사업을 하게 된 의미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으로는 가난을 극복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영적으로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에 어려운 나라의 젊은이들이 와서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일 것이라 믿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인맥’이기를…
한아재단 장학생들을 만나러 그가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몽골 브룬디 베트남 르완다 태국 미얀마 등 이번 학기까지 한아재단이 맡은 장학생은 12명이 된다. 그의 만년의 꿈이 하늘을 날고 있다.
이 장학생들이 잘 교육받아서 나라를 섬기는 진정한 일꾼이 되기를 기도하며 지원하는 이충선이사장의 믿음과 기대가 또 있다. 이들이 같은 캠퍼스에서 같은 기간 동안 공부하는 동문이기에, 서로 좋은 인맥을 쌓아 앞으로 각자의 나라로 가서 각처의 현장에서 일할 때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관계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각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기독교교육을 통해 육성하는 장학사역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혀가는 또 하나의 큰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충선 이사장은 이번 1차 프로젝트에 미화 60만불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유산 안남기기 운동 전도사가 되었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 그들의 뼈와 살이 썩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유전자처럼 바꿀 수 없는 보석같은 정신적 유업을 주자고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설득한다. 제2, 제3의 이충선이 이어질 꿈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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