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의 나이 30대 중반은 자신의 결혼관을 점검할 중요한 길목이다. 결혼의 마지막 찬스를 위해 배우자의 조건을 단순화하든지, 수동적인 자세로 결혼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연분’을 기다려 점잖게 있기로 하든지 말이다.
후자는 “괜찮은 사람은 이미 짝이 있다”, “신앙이 있는 남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나이든 남자도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더라”며 의기소침해 하지만, 소망을 가지고 ‘한 사람’을 찾는 사람은 자신이 중요시여기는 조건들만 가지고 마음을 연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거예요
34살 세나는 유학을 떠나며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거예요. 공부와 결혼, 둘 다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신앙 있는 좋은 가정의 사람이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만날 거니까요.”
딸을 믿는 부모님도 그러라고 하며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떠난 지 6개월, 부모님께 여행을 오시라는 연락이 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용 등 여러 여건이 좋은 시즌이고 만나볼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벌써?’ 딸과 함께 공항에 마중 나온 청년은 영어를 잘하는 동양인이었다. 그날 밤 그동안 말을 아낀 세나가 처음부터의 스토리를 쭉 엮어 주었다.
학위를 목표로 학교에 오자 전력을 다해 공부를 시작하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은행개설, 병원 정하기, 교회 알아보기, 잡화 쇼핑 등 일이 많았다. 그런데 자동차가 없어 애써야 하는 순간에 한 남학생이 친절하게 하나씩 안내해 주더라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그 친구는 중국계 브루나이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브루나이를 찾아보니 보루네오 섬 북부에 있는 나라로 석유 생산국이며 이슬람 신앙이 강하다고 나와 있었다. 생소한 나라인데다 신앙도 안 맞을 것이라 여겨 호의에 적당히 사례하고 지내려 하는데, 그 친구 말이 세나가 학교에 도착하던 첫날부터 눈여겨보았다고 하며, 자기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영국서 유학한 분들로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아들이 신앙 좋은 배우자 만나기를 늘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이 아닌가.

신앙의 가정이면 된다고 했더니…
세나는 다가오는 그 친구를 다른 때처럼 밀어내지 않고 바쁜 중에도 한 단계씩 알아가기로 했다. 나이가 네 살이나 어린데? 그 친구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세나가 원하는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좋다고 하며 그걸 위해 학위과정을 확실하게 공부하자고도 했다. 생각해보니 유학 떠나며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남자면 국적 가리지 않고 사귀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세나가 마음의 문을 열자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만나러 오시겠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세나의 부모님도 맞춰 오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분들은 공직에서 일하고 있었고, 일찍 서양 학문을 공부한 열린 사고로 아들에게도 유학의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주변에서 세나에게 ‘브루나이 귀족집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자 세나는 ‘이슬람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기독교를 믿는 집이니 귀족이 맞다’고 응수한다.
좀 늦은 느낌의 결혼이 이렇게 금세 진행되고 있었다. 사윗감 얼굴을 익히며 바로 상견례가 이뤄지고 뉴질랜드를 한 바퀴 여행하고 나니 결혼식 준비만 남았다.
한국을 좋아하는 그들은 한국의 교회에서 한복을 입고 예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식 외에 다른 절차는 다 생략하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은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한다고.
30대 중반에 유학을 떠나는 딸을 보며 복잡했던 머리가 한 순간에 가벼워진 세나 부모는 꿈같고 영화 같이 ‘말대로 공부와 결혼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이 상황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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