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디바(Godiva), 벨기에산 초콜릿의 이름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고디바 초콜릿의 상표가 이상합니다. 긴 머리의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그림에 얽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고디바는 11세기 영국의 코벤트리 지방 영주 레오프릭의 아내였습니다. 그 영주가 전쟁 때문에 많은 세금을 거뒀습니다. 영주에게 속한 백성들이 너무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영주의 아내 고디바가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하도록 요청하자 남편은 조롱하듯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디바가 벌거벗고 마을을 한 바퀴 돌 결심을 합니다. 그 소문이 나자 마을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 영주 부인이 말을 타고 도는 시간에 누구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모든 창문은 커튼으로 막아 영주 부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디바를 그린 그림에 보면 말을 탄 뒤의 마을 모습은 모든 문이 닫혔고 창문도 커튼으로 가려진 그런 모습입니다. 그 장면이 고디바 상표가 되었습니다. 이때 몰래 훔쳐본 재단사 톰이 나중에 눈이 멀었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집니다. 그 톰으로 기원한 관용어가 ‘훔쳐보는 톰(peeping Tom)’입니다.
11세기 영국 여인이 벌거벗고 말을 탄 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죽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마을 사람들의 세금 감면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해냈습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세금 폭탄에 울고 있는 백성을 살리려던 이 여인의 희생은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희생 쉽지 않습니다. 영주의 아내가 영주 치하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가 감동입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고디바 초콜릿으로나마 살아남은 것입니다. 1926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그 이름의 초콜릿 숍이 생기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
최근 세 모녀가 자살한 사건에 이어 안타깝게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써놓고 70만원의 방세와 공과금까지 20원을 주고 산 흰 봉투에 담아놓고 죽은, 팔이 부러져 일할 수 없는 엄마가 30대 두 딸과 함께 번개탄을 피우고 죽는 사건이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넘고, 대통령이 4만 불 시대를 약속하는 이 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모녀는 보증금이 5백만 원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서도 방세와 공과금을 낼만큼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슬픈 선택을 했을까요? 희망! 그렇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든 딸, 신용불량자가 된 작은 딸. 도시의 고립된 섬 같은 생활공간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세 모녀가 죽기 위해 흰 봉투에 월세를 담고 번개탄을 피울 때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요? 죄송하다는 글을 남겼는데 그들로 하여금 희망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죄송하고 그런 이웃을 방관하고 있는 우리 교회가 죄송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번개탄을 사고 있을지 모릅니다.

벌거벗지 못하는 교회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을 짓고 우리만의 천국을 즐기는 교회에서 그들은 희망을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왜 우리 시대의 교회는 고디바처럼 벗을 생각을 못할까요? 고디바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벌거벗을 수 있었는데 교회는 희망을 잃은 이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왜 벌거벗을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려고 할까요? 갈수록 더 고급스럽고 화려한 옷을 입는 교회를 보면서 유럽의 화려한 성당들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요?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서 벌거벗긴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과연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예배당, 그 불빛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죽어가는 데 그 예배당에는 주님이 계시기나 할까요?
막 제주도에서 돌아와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지난 3일 동안 행복한 여행을 했습니다. 매년 농어촌교역자 부부 20가정을 초청해서 위로회를 해 오던 중에 이번에는 도시 미자립교회 목회자 부부들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50대 사모님, 제주도를 처음 와보신 60대 목사님. 이들과 함께 제주를 여행하면서 혹시라도 도시의 호사를 누리는 목사의 또 하나의 사치처럼 보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그래도 중심이 통한 모양입니다. 모두 행복하고 또 진심으로 고마운 눈빛을 보내며 김포공항에서 작별을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한 여행에 주님도 동행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내 것을 조금씩 내려놓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정성껏 섬겨주신 우리 성도들의 손길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짐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 벌거벗고 마을을 돌았던 고디바 같은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응원이 건강한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굳은 결심이 흐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세 모녀의 자살 앞에 가슴이 저리던 제가 제주도 여행을 통해 희망을 찾았습니다. 지금 참 행복합니다.

김관선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CBS TV ‘산정현 강단’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신문과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진정성’으로 목회하며 ‘교회의 본질’ 지키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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