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아빠다’ 김지배 장로

딸아이가 태어난 지 1만 일째 되는 날을 기억하는 남자, 아내의 60세 생일까지 뜬 보름달이 720회임을 계산하는 남자, 아들의 서른 살 생일에 ‘10958’(태어나서 30살까지의 날짜 수)이란 숫자가 써진 케이크를 선물하는 남자…, 그런 김지배 장로(수지영락교회)가 애틋하고 감동적이며 따뜻하지만,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아픔까지 담아낸 책 ‘사랑하니까 아빠다’(아름다운동행)를 펴냈다.
김 장로 부부와 아들 하나, 딸 하나, 이 단출한 가족의 일상은 한없이 포근하지만 가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과 슬픔 역시 오롯이 배어 있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는 각자 역할을 맡아 일을 분배하여 아이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는 추석날 모였던 일가친척들의 시시콜콜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또박또박 육필로 적어 보내는 따뜻한 아빠이자 아들이지만, 대학생이 된 딸의 방황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아비로서의 회한과 고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정작 책을 내려니 독자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들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 개인적인 부끄러움은 사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고 가정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6일 교계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김 장로는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가정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역설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정 가운데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20% 정도. 아동 5명 가운데 한 명은 깨어진 가정에서 자란다. 김 장로의 아픔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이 깨어짐으로써 겪는 아픔은 부부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가정은 ‘인생의 베이스캠프’
김 장로는 가정을 ‘인생의 베이스캠프’에 비유한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뿌리이자 토대가 바로 가정이라는 생각이다.
“ ‘가정이 인생의 베이스캠프’라고 내게 처음 말해 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렸던 탓에 그 의미가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의 아버님은 그 말씀대로 평생을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 이 세 가지가 아버님 삶의 전부였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할까? 김 장로에게 가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보려면 이 책 중간쯤에 나오는 ‘회갑 날의 눈물’을 읽어보면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의 60회 생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들과 조촐한 축하 외식을 한 김 장로는 거실에 양초를 켜놓고 아내부터 시작해 두 아이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을 한다. 그날 아내의 발을 씻기며 읽은 김 장로의 카드에 적힌 글귀는 이랬다.
‘그동안 이 부족한 남편으로 인해 제 아내가 흘려야 했던 눈물과 고통의 흔적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아내를 섬기는 마음으로 발을 씻겨줄 때 아내에 대한 저의 잘못들도 다 씻기게 하시고, 아내가 저로 인해 받았던 상처도 하나님께서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카드를 읽으며 아내의 발을 씻기던 김 장로의 손은 아내의 발에 박힌 굳은살로 많이 아팠다. 이날 이 가족은 발을 씻어주는 아빠도, 씻김을 당하는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가장들
김 장로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경기도 수지의 고즈넉한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가장 격심한 변화를 겪었던 한국 근대사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온 그로서는 어쩌면 지금의 시간들이 마치 ‘보너스’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계속해 온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 김 장로는 자신만의 웰빙 노후를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
▲새 옷 사지 않기 ▲신문은 하나만 구독하고 신용카드도 하나만 남기기 ▲평생 모은 책 기증하기 ▲도서녹음 자원봉사하기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 그리고 타인을 위한 봉사의 균형 맞추기 ▲장기기증서약과 월 1회 헌혈하기
가정에서 시작해 자신의 삶으로 연결돼나가는 김 장로의 책 ‘사랑하니까 아빠다’를 읽다 보면 한국전쟁에서 시작해 격동의 70~80년대를 거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초석을 놓고 지금의 풍요를 만들어냈던 성실한 한국 가장들의 흔적과 그림자들을 언뜻언뜻 느낄 수 있다. 성실함을 무기로 묵묵히 격동의 한 시절을 견뎌왔던 ‘어제의 가장’들은 이제 ‘오늘의 가장’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채 한걸음 뒤편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 둘을 연결시키는 핵심 고리는 여전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고 아빠는 언제나 ‘사랑하니까 아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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