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무담보·무보증 ‘작지만 착한 대출’ (사)더불어사는사람들

TV 소리만 윙윙 들리는 방안,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끊은 어머니와 두 딸이 함께 누워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혀를 차며 안쓰러워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대화 끝에는 세 모녀 동반자살 이야기가 여전히 따라붙습니다. 왜일까요? 안타까움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요?
이번 커버스토리에는 그런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신용 불량으로 제도권 금융에서는 한 푼도 대출받을 수 없는 사람들,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은 액수이지만 무이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을 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더불어사는사람들(www.mfk.or.kr, 이사장 전양수)’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상환율이 92%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손을 잡고 일어선 이들이 또 다른 어려운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각박해졌다고 한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를 내놓는 이야기, ‘더불어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이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절망 끝에서 잡은 손
35세 가장, 두 딸의 아빠인 지명 씨(가명)는 죽고 싶었다. 4년 전 실직을 한 후 부모님 암투병까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순간이었고, 야간에 택배 상차, 전단지 나누기 아르바이트까지 쉴 틈 없이 일했지만 월세를 못 내 결국 6살 딸아이와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반을 차에서 지냈어요. 하지만 아내 배는 불러오는데 딸아이와 추운 겨울을 차에서 지나게 할 수는 없어 찜질방으로 보내고 저만 차에서 지냈지요. 그리고 지난 3월 2일 둘째딸이 태어났어요. 갈 곳이 없어 산후조리원에서 모두 지내는데 비수기라 택배일이 없어 조리원비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었어요.” 다 같이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제 막 아기를 낳은 아내에게 말했어요. 같이 죽자고. 살 희망이 없어서. 아내도 동의하더라고요.”
눈물로 말을 잠시 못 잇던 지명 씨는 한 번만 더 힘을 내어보고 정 안되면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 ‘신용불량자 대출’을 알아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서 ‘황당한’ 뉴스를 읽게 되었다. 한 일간지에 소개된 (사)더불어사는사람들(이하 더불어)의 소액 대출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신 같은 신용불량자에게도 대출을 해준다니. 사연을 올리고 통화를 했다.
30만원, 지명 씨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대출해주겠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해당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을 때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그를 위해 ‘더불어’ 이창호 상임대표가 보건복지부와 해당 군청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찾아 긴급구호를 받게 해준 것. 조리원 비용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상환할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대출뿐 아니라 자립 위한 적극적 지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델은 극빈자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제공해 빈곤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소액 대출은행 ‘그라민은행’이다. 1983년 법인으로 설립된 그라민은행은 극빈자들에게 150달러 안팎의 소액을 담보 없이 신용으로만 대출해줬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2008년 말로 767만 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8%가 빈곤을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돈을 갚지 않는다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지만, 상환율이 연평균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빈곤퇴치에 이바지한 공으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더불어’도 지난 2011년 8월 설립, 이와 같이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적은 금액을 대출해주고 있는 것. 무이자로, 담보도 신용보증도 따지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 대출자가 작성한 대로 신용상태, 자산, 직업 등을 믿고 최대 100만원까지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또한 대출 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 등 다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치아 상태가 나쁜 대출자를 위해서는 저렴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연결해 진료비를 일단 부담해주고 나중에 갚도록 했다.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대상은 그냥 도와주는 것이 맞지요. 그러나 갚을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대출받은 돈으로 빚을 갚거나 장사를 시작해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진짜로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지만 상환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담보나 신용이 없어 소액조차 대출받을 수 없는 수혜자들의 자립의지를 높이고, 나눔‧신용‧협동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그 취지. 그래서 수혜자들이 또 다시 소액 출자를 해 별도의 출자금을 조성,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대출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수혜자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출자금이 아닌 이 후원금으로 변경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들처럼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에게 조건없이 도움을 주고 싶어서이다.
“신용불량자라 어디서도 돈을 빌릴 수 없었어요. 기사를 보고 용기 내어 문의했는데 며칠 안 돼서 입금을 해주셔서 공과금이며 이것저것 감당했습니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도 있구나, 저같이 못난 사람에게도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다니. 너무 감사하고 상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한 후원자님을 통해서 컴퓨터 모니터도 후원받게 되었어요. 중고도 아닌 새 것을. 너무 감사합니다.”
“몸이 좋지 않아 검사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 사정을 들으시고는 생활자금과 병원까지 알아봐주셔서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렇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받기는 처음인 거 같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감사합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이들의 한결같은 소리는 처음으로 신뢰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했다는 것과 다시금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출한 것이 지금까지 240여 건, 1억1천여만 원이며, 자산은 460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가능한 서비스
처음부터 사람들이 믿어준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냐며 의혹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더불어 소식이 두루 알려지게 되자 이제는 좋은 일 한다며 후원해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 ‘더불어’가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배경은 모든 일이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무실 한편에 책상 하나 둔 것이 전부이다. 이창호 상임대표와 전양수 이사장, 배순호 부이사장, 전도웅 다문화위원장 등 여러 뜻있는 이들의 헌신으로 가능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신용협동조합 운동에 몸담아온 전양수 이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생긴 신협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은 돈을 빌릴 수 없는 구조가 됐다”며 “평생 신협에 몸담아 온 사람 입장에서 반성하며 대안을 찾은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배순호 부이사장(사랑의교회 장로)은 30여 년간 외국계 은행에서 일한 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으로 가 그곳에서 중증 장애아 대안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 ‘졸도시’ 은행을 만들었다. 졸도시 은행에서는 민족, 국적과 상관없이 소상공인, 중소기업 위주로 50~5000달러까지 대출을 해주고 있으며, 현재 키르기스스탄에도 ‘더불어’ 지회를 준비 중에 있다.
전도웅 다문화위원장(마포교회 장로)은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를 지내고 대학원장을 역임한 뒤 2006년 은퇴, 태국 치앙라이의 매쑤어이 지역에 2010년부터 ‘평화마을 자립개발 10개년 계획’ 컨설턴트로서 자립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마을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있다. 원주민 자립을 위해 지난해 자비로 협동조합을 꾸렸고, 협동조합 설립 이전에 ‘더불어사는사람들’과 평화재단이 지원한 종잣돈 200만원으로 대출해주는 소액신용은행도 시작했다.
“지난 연말에 더불어 고객분들을 만났는데 너무나 고마워하시는 거예요. 오히려 저희가 생색내는 것 같아 부끄러웠고 앞으로 더 겸손히 성실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표(길벗교회 집사)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더불어’ 사역에 뛰어들었다.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대출문의를 하는데 기금 부족으로 대출을 못 해줄 때 미안하고 답답한 심정입니다. ‘더불어’로 대출문의를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 신용불량자들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사회는 나눔만이 아니라 신용·협동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에서는 교회의 참여를 부탁한다. 자립 능력은 있지만 당장 어려움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이웃을 위해 더불어에 교회가 후원을 하면 교회 이름으로 자립기금을 대출하겠다는 것.
“초창기 신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이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서 돕는다면 간접선교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제는 ‘자선’을 넘어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넘어서서 ‘질적인 성숙’이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흐뭇한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 설날에는 두레생협를 통해서 안성과 평택, 광명지역 대출고객들에게 생활용품을 선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은행에서는 고객이 대출을 해가면 명절에 오히려 선물을 보내주잖아요. 저희도 저희 고객에게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은행에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의 : 02)3275-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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