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그 시작과 끝’ 컨퍼런스

죽음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생각과 인식 그 너머에 존재하는 죽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고, 삶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종교적·철학적 주제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더 이상 빛을 잃었다. 오늘날 죽음은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다루어지는 질병의 일종이고 장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하나의 경제재가 되었다. 인간의 죽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보면 죽음은 중요한 문제다. 삶은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는 논의가 불가능하고, 죽음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삶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생명현상의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더욱이 종교적인 영역에서 죽음은 모든 도덕적 행위의 근거이고, 특히 기독교의 경우는 부활신앙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2월 10~11일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임종, 그 시작과 끝’ 컨퍼런스는 주목할 만하다.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와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 컨퍼런스는 종교적·의학적·사회적·철학적 관점에서 죽음에 관해 숙고해본 의미 깊은 자리였다.

기형화된 현대의 죽음문화
이 자리에는 종교학자, 의사, 목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 7명이 강사로 나와 죽음에 관한 담론을 전개했다. 정진홍 박사(아산문화재단 이사장)는 ‘죽음이 기독교에 말을 걸다’란 제목으로, 전세일 박사(CHA의과학대 대체의학대학원장)는 ‘죽음 이야기들’이란 제목으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는 ‘FINISH로 끝내준다’는 제목으로 강연했고, 박상은 원장(샘병원), 정운섭 변호사, 김향숙 원장(가정사역평생교육원), 김종훈 목사(오산침례교회) 등은 임종환자를 위한 의료, 유가족 정서 돌봄, 임종 준비를 위한 법률상식 등에 대해 강의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미리 써온 강연 원고를 그대로 읽어 내려가 사뭇 눈길을 끌었던 정진홍 박사는 죽음을 마치 질병처럼 하나의 관리대상으로 여기는 현대인의 인식과 그로 인해 비틀어지고 기형화된 현대의 죽음문화를 지적하며 죽음에 대한 전통사회의 관점과 각 종교별 관점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정 박사는 특히 “이런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이해로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며 “죽음을 제대로 봐야 삶이 총체적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 ‘총체적 의학’의 입장에서 죽음에 관해 논의를 펼쳤던 전세일 박사는 생명현상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역동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죽음에 담긴 삶의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죽음 연구가 삶의 질 높여
전 박사는 “타나톨로지(죽음학)는 죽음을 다루지만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며 “죽음에 대한 연구가 오히려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전 박사는 영국의 경우를 예로 들며 “영국은 타나톨로지를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면서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졌다”며 죽음을 회피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죽음에 대한 담론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컨퍼런스를 마련한 송길원 목사는 전통적으로 종교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죽음의 문제가 의학적·법률적 영역으로 넘어가버린 현대의 죽음문화에 대해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송 목사는 과거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그 삶의 궁극적인 마침표인 죽음은 사제가 집전하는 의식의 형태로 축하되고 위로되었지만 이제는 이런 중요한 통과의례를 모두 병원의 영안실과 법률적 절차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목사는 “이는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요점”이라며 “한국교회가 이런 부분에 좀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착한 장례운동 전개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 참가했던 참석자 160여명은 4월 1일을 ‘유언의 날’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생명운동 발기인 서약을 했다. ‘유언의 날’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상속 담당 변호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날이다.
참석자들은 또 ‘내 생애 마지막 선행’으로 착한장례운동에 참여할 것을 서약하기도 했다. 착한장례운동은 비싼 수의 대신 평상복을 입고, 조화를 받는 대신 북한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보내는 등 ‘착한 기부’를 통해 생의 마지막 시점을 선행으로 마감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조문객 수만큼, 고인의 나이만큼 조의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운동도 펼쳐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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