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병동에서의 세리머니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의 한 어린이 병원 소아암 병동에서 축복송 세리머니를 가졌습니다. 환아 부모회에서 정성으로 마련한 크리스마스 이벤트였지요. 환아 한 명, 한 명에게 큼지막한 선물을 전달하고 함께한 모든 이들이 기타 하나에 축복송을 같은 마음으로 불러주었습니다. “000는 이 세상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000를 통하여서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되리” 이 노래에 똘망한 눈망울만 껌뻑 거리기만 하는 아이, 엄마 뒤로 숨어 고개만 빼꼼 내보이는 아이, 부끄러워 몸을 배배꼬며 바닥이나 천정만 보는 아이.
하지만 엄마들은 감정보다 눈물이 앞섭니다. 익숙해져버린 눈물 때문이지요. 엄마 몇 분은 아이를 병실에 두고 아이의 이름으로 대신 축복송을 듣습니다. 얼마나 아픔이 깊었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엄마들의 두 볼엔 눈물의 강이 흐릅니다. 얼마나 애절한지. 건강할 때 듣던 축복송과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들려졌을 것입니다. 사진 속 천사의 미소를 한 한아이의 미소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이 천사도 밤이 되면 일그러진 얼굴에 “엄마 엄마, 아파 아파” 하며 긴긴밤을 울다 지쳐 잠이 듭니다. 자식 우는 소리에 어찌할 수 없는 엄마는 밤새도록 가슴에 새까만 숯을 굽습니다. 눈물로 하얀 밤을 지새운 엄마들의 대낮은 늘 비몽사몽 분주하기만 합니다.

소아암 병동의 아픈 일상
부모회 회장님이 안타까운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한 소녀는 수년에 걸쳐 수술과 식이요법, 민간요법, 대체의학 등 갖은 노력으로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냈는데 기쁨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 재발통보를 받아야 했다고. 그날 밤, 고층 병동에서 엄마와 소녀는 동반 자살소동을 벌이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금 소녀와 엄마는 병마와의 전쟁에 끌려 나갑니다.
이런 상황을 회장님은 방금 마라톤 선수가 마라톤을 끝냈는데 안내 방송에서 다시 마라톤에 재출전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장님의 말은 마치 심장을 관통한 송곳과도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부모 앞에 자식이 아프고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겠지요. 이런 슬픔이 어제 오늘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소아암 병동의 일상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이란 건 없지요.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듯 어디든 희망의 북소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빌립보서 2:2) 이 말씀처럼 소아암을 기적적으로 이겨낸 환아 부모들이 같은 마음, 같은 사랑으로 상담실을 열었습니다. 새로 입원하게 된 환아 부모들과 투병중인 환아 부모들의 희망의 멘토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태어난 상담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라고 합니다. 동병상련이 낳은 사랑의 기적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일순간 길을 잃은 환아 부모들에게 이 상담실은 구원의 빛줄기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물론 이 상담실에서는 신앙 전도에 관한 말은 금기라고 합니다. 병을 도구로 삼아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도리어 복음의 빛을 가리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앙을 가진 멘토들이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며 같은 마음이 되니 도리어 환우 부모들이 신앙을 가지게 되고 같이 예배당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같이’가 ‘가치’라는 말이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진리는 입에서 입으로가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봅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길을 열다
소아암 부모회의 사랑의 수고가 치유의 빛으로 구원의 빛으로 아름답게 비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랑은 어디서나 눈물겹다.” 한희철 목사님의 짧은 한 줄 노래가 내내 제 입에서 불려 졌습니다. 포기는 또 다른 장벽을 만든다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실패자는 아니라고. 침착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절망의 끝에서 의외의 길을 열어가는 풍경을 보는 듯 했습니다. 진정으로 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순간 그 때부터 하늘도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때론 흘려듣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힘이 들면 변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소아암 병동 속에 흐르는 사랑의 강줄기를 보며 사랑의 양이 곧 능력의 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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