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명소 LA미용실 이명숙 원장

“부는 바람의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의 움직임까지도 얼마나 소중한지요. 거리를 지나는 영혼들이 하나님을 만났는지 아닌지가 늘 마음에 걸려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이웃에 사는,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을 위한 기도는 쉴 수가 없어요. 내 삶이 다하기까지…”
1990년대 로스앤젤리스 코리아타운 웨스턴 8가에 있던 여성들의 명소 ‘L.A. 미용실’의 여주인 이명숙 원장의 요즘 고백이다. 가장 머리손질 잘하기로 유명했던, 늘 고객이 넘쳐나 북적이던, 어려운 이민자들과 목회자 가족에게는 위로의 장소이던 더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이명숙 원장은 15년 전부터 그 자리에 없다. 그가 떠난 코리아타운 웨스턴8가에서는 더 이상 과거의 흥왕했던 영광(?)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썰렁함이 남아있을 뿐이다.

암 선고를 받던 날
40여 년의 이민생활에서 남편(이상기 목사, L.A.평강교회)을 당당한 목회자로 사역하게끔 도우려고 기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하느라 무진 애를 썼고, 자신의 재능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만 있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열과 성을 다해 섬겼다. 한인사회의 귀감이었다.
1999년 6월의 어느 날 이상기 목사의 단란한 가정에 이명숙 사모의 유방암 2기 선고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상기 목사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날 저녁, 자녀들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 모였다.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리자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순간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목사는 가족 모두의 손을 잡고, 사모의 암소식을 전했다. 사모도 사모지만, 어린 자녀들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교회를 뒷바라지 하고 세 아이를 키우며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던 이 사모의 무게가 느껴졌다.
“서로가 손을 꼭 붙잡고 하나님이 계시니까 이겨낼 것이라고 격려했어요. 하지만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큰딸, 대학생인 둘째,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덜컥 겁부터 나더군요. 급히 날짜를 잡아 수술을 했고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병상에서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시편 50편 15절)는 따뜻한 음성이 나의 지친 몸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잘 나가던 L.A.미용실을 접고 나서 15년이 지나며, 절망이 아니라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있는 이 가녀린 사람이 고통 중인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준 이야기가 궁금하다.

고난의 유익을 깨달은 시간
그 이후, 명숙사모가 긴 투병시간을 지나면서, ‘고난의 유익’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제게 찾아온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만약 그냥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면,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도 껍데기만 알 뿐이었을 겁니다.”
15년 동안 여러 차례의 암 수술과 약물치료, 계속되는 부작용과 재수술… 전이로 인한 여러 차례 수술과 키모테라피, 또 수술, 또 더 강한 치료….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의미와 자기부인의 내용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이 ‘고난의 유익’이라고 고백한다.

‘식탁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
살아있는 시간을 공유하는 이상기 목사 부부는 서로에게 감동이다.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모릅니다. 함께 식탁을 대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함께 있는 사람이 소중하고, 허락하신 은총이라 여깁니다.”
아침에 함께 또 하루를 선물로 받았음을 확인할 때마다, 감동이 번진다. 남편 이 목사는 아내 수발을 드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다. 언젠가 이 일이 중단되어야 할지도 모를 그날에 대한 안타까움을 미리 생각하며, 오늘 최선을 다하는 남편으로 살며, 또 병상의 아내가 기도하는 신실한 목회자로 남게 되는 것이 기도제목이다.
“지난 2년 동안 긴장의 연속으로 지내왔습니다. 지난 해 8번이나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1월에 입원을 해서 7월에 집으로 돌아와 2개월 이상 집 밖 출입을 못했습니다. 금년에만 수술 4번에, 폐에서 5번의 물을 빼야 했고, 앞으로도 빼야 합니다. 그뿐이 아니라 수술할 수 없는 뇌 깊은 부위에 이상이 발견되었다는 최종판정도 받은 상태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 너무 고생하지 않고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넓어지고 깊어지는 기도의 지경
이(정)명숙 사모의 남은 시간은 기도로 채워지고 있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늘 괴로워하며 예민한 환자들을 대하는 어려운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소로 감사를 드립니다. 거리를 지나는 친분 없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모르고 삶을 마칠까 안타까워 또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계신 아프고 슬프고 고통 겪는 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가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쉴 수가 없지요. 목사님을 위한 기도, 교우들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교민사회를 위한 기도, 나의 남은 시간을 위한 기도, 기도의 영역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어요. 감사하니까요!”

2011년 최고의 환자로 선정되다
이런 맑고 아름다운 영혼이니, 늘 표정이 감동이다. 아무도 이 사모를 시한부 삶의 환자로 보지 않는다. 2011년에는, 로스앤젤리스 성 빈센트병원에서 그해 최고의 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유는, 병원역사 이래 방사선 치료를 가장 오래(14년 이상) 받으면서도, 의사 간호사 직원 환자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상냥한 미소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최고의 사람이라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뽑았단다.
다리뼈에 임플란트를 하는 기이한 수술까지 하고서도, 침상에서 명숙 사모는 늘 찬양을 쉬지 않는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 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이 찬송이 그에게 위로이고 격려이고 도움이다.
이런 치열한 투병 중에도 아름다운동행을 위한 기도도 쉬지 않는단다. 매년 후원금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운동행 끝까지 후원”
투병 중에 아름다운동행이 창간되었기 때문에, 창간발기인이기도 하고, 또 기도회원으로 일찌감치 등록했다. 2년 전에는 후견인이 되어줄 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게 함께 동역하자고 파티도 열어주었던 열정가이다. 이런 섬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사역에 동참하는 애씀이고 사역자들에게는 큰 격려이다.
고통 중에 이런 중보기도와 섬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해맑은 표정을 잃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로 서 있다. 가녀리지만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맑은 영혼이 쏟아놓는 사랑고백
이명숙 사모가 풀어놓는 마음은 이렇다.
“양말도 혼자 신지 못할 만큼 겉사람은 점점 후패해가지만, 찬양할 수 있고 ‘송이꿀보다 더 달고 맛있는 말씀’을 묵상하는 행복이 제일 큽니다. 제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동안,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역에 힘쓸게요. 불쌍한 영혼들이 많으니까, 그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 남편에게도 교우들에게도 친지들에게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사는데, 사랑의 빚을 갚으며 남은 시간을 채우겠습니다.
건강할 때는 불평과 원망이 많았는데, 이제 그런 것들은 다 달아났어요. 감사의 조건을 다 갖췄는데도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불쌍해요.
저도 목사의 사모이면서도 교만했고 성질을 부리기도 했고 참 예배자로 살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씻어낼 시간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지요.
또 한가지 아쉽고 후회스럽고 미안한 것은 젊은 날,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 신앙교육을 잘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다 장성하고 결혼한 아이들에게 기도와 말씀으로 자녀교육을 하라고 당부합니다.
세상의 어떤 재산보다 힘있고 단단한 것이 믿음의 재산 아니겠어요?”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시간임에도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음은 은혜를 입음 때문이다.

남편에게 보내는 고백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불치병을 고치려 미국땅으로 건너간 동갑내기 첫사랑인 남편을 따라 스물두살에 태평양을 건너간 정명숙은 이명숙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돌이켜보면 재생불량성 빈혈이었던 이 목사는 건강하게 목회할 수 있는 기적을 이미 경험했다.
또한 15년이라는 이명숙 사모의 투병시간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특별히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또 하나의 기적, 행복한 시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최근에 가장 아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 기막힌 와중에도 교회를 지켜주시고, 교만을 고쳐주셨고, 목회자의 고충을 알게 해주셨으며 내려놓고 의지하게 만드셨다고 고백한다. 아이들도 모두 건강하게 자라나, 사회에 힘이 되는 일꾼으로 성장했다.
자신이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감사가 눈에 보일 수 있었을까 라고 되묻는 이명숙 사모. 하나님이 주신 이런 축복과 은혜에 관해 알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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