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울고 있습니다.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군도 한 자락인 레이테 주를 휩쓸고 지나간 사흘 후, 우리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태풍피해라기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지진 피해현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레이테 주의 주도 타클로반 어디에도 온전한 건물은 없었습니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남긴 흔적들은 태풍의 위력을 여전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재난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수습되지도, 수습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피해 규모를 섣불리 말한다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알프레드 타클로반 시장은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수송기보다 더 필요한 것이 시신을 수습할 트럭”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신이 사방에 널려있었습니다. 시신이 부패하는 악취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극적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 아닙니까. 생각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시신 수송할 트럭 시급
게다가 팔 물건도 살 물건도 없으니, 유엔 관계자는 “며칠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폭동이 우려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곳곳에서 약탈이 일어났고, 탈옥해서 도망가는 죄수들을 향해 경비대가 총을 겨누기도 했다고 AP통신이 전했습니다.
필리핀은 우리가 한국전쟁으로 어려울 때 7천420명의 젊은이들을 파병하여 도와준 나라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도울 기회가 아닐까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장에서 필리핀 대표 담당관이 흘린 눈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눈물은 ‘필리핀의 눈물’로 전해지며 울고 있는 필리핀을 돕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자연재해의 규모는 커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의미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돈이 소용없는 곳
우리가 구호품을 싣고 필리핀 세부항에서 타클로반으로 가는 해군 수송선에서 만난 필리핀 적십자 대원은 타클로반에서 구호품을 나눠주던 적십자대원 한 명이 희생됐다고 전해주었고, AFP통신은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창고 벽이 무너지면서 여덟 명이 압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은 계엄령 상태로 사태를 수습해가고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구호품과 구호팀과 의료진 등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국경을 넘어 지구촌이 하나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임에 틀림없습니다.

재난 사흘 만에 구호대 출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긴급구호팀은 지난 11월 11일 세부에 도착했습니다.
재난 당한 이웃을 돕기 원하는 현지의 시티교회(Jo Alfafara목사)와 협력하여 한 가정이 5일간 생존할 수 있는 구호키트 1천2백개를 만들어서 이튿날 해군 수송선에 싣고 스물일곱 시간 만에 타클로반에 도착했습니다.
15일 필리핀 해군과 육군의 도움을 받아 군 트럭 4대에 구호품을 싣고 무장한 군인 30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이재민들이 수용되어 있는 레이테 종합운동장으로 가서 안전하게 이재민들에게 일일이 구호품을 전달했습니다.
레이테 종합운동장에서 구호품을 나눈 첫 팀이라고 현장을 취재한 외신기자가 전해주었습니다. 안전 문제 때문에 재난 일주일이 지나서야 첫 구호품 분배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Thank you~’ 우리의 ‘Sorry~’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트럭을 에워싸 당황했지만 이내 군인들이 질서를 잡아갔습다. 구호품을 나누기 시작하자 이재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구호품을 나누는 중에 비가 쏟아졌지만 분배는 계속됐습니다.
엄청난 재난으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교회가 준비한 구호품을 받고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표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중 꽤 많은 사람들은 한국말로 감사하다고 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코리아’, ‘코리아 처치’를 연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소 지으며 “Thank you!”를 연발할 때, 우리들은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Sorry!”로 응답했습니다. 구호품 분배에는 필리핀 보건복지부 장관 딩키 솔리만(Dinky Soliman)도 함께 했습니다.

필리핀의 눈물을 닦아 줍시다
세계 어느 곳이든 재난 당한 이웃에게 한국교회는 희망이고 싶습니다. 아니, 그렇게 섬겨야 하고 섬기고 싶습니다. 재난으로 울고 있는 필리핀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한국교회가 연합해서 일어나고 있음은 하나님의 기쁨일 것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니까요.
처참함의 극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돈이 있어도 돈이 소용없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보듬을 수 있는 기회와 마음과 힘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그것이 ‘사명’ 아닐까요. 한국전쟁 당시 그들은 이 땅에 왜 왔을까요?

조현삼
목사. 상계동에 광염교회를 개척했을 때, 세든 교회 건물 외벽에 붙여있는 ‘감자탕’이란 식당 간판 덕분에 ‘감자탕교회’라는 별명을 가진 광염교회 담임. 늘 섬기고 배려하는 목회로 한국교회와 지구촌에 온기를 더해주고 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현장에서 만들어진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www.wneighbors.com) 이름으로 재난 당한 이웃이 있는 곳이면 한국교회 이름으로 어디든 찾아가 섬기고 있는 ‘119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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