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주현 씨는 시각 장애를 가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결혼한 지 몇 해가 되는데 아기가 없어 늘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면서, 시어머니 시중을 잘 들고 있어 자주 눈길이 가는 젊은이였다. 앞을 못 보는 시어머니의 궁금증을 미리 알아서, 누가 가까이 오면 슬쩍 귀엣말로 알려주고 필요할 듯 보이는 물건들을 척척 손에 대어주는 자세가 어찌나 적절한지, 수선스럽지 않고 야박하지 않은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는 중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 귀한 아기가 생겼다. 쌍둥이였다. 몇 년 만에 잉태된 아기들로 인한 감격도 잠시, 입덧과 함께 배가 금세 부풀어 오르며 이런저런 증세로 힘겨운 나날을 이어갔다. 임산부는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 말에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좋지?”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드리면 우리를 이해하실까?”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면 편할까?” 며칠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저희가 노산인데다 쌍둥이를 가져서…”
그러자 어머니는 다 알고 있다고 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그전부터 거동이 힘들어지면 가려고 했던 곳이 있다. 그리로 좀 일찍 가는 거지”라고.
어렵고 무거운 얘기가 솔직한 대화로 쉽게 풀렸다.
“어머니, 아기들이 좀 자라면 모셔올게요.”

여기까지 왔네요
주현 씨는 임신 6개월부터 거의 누워 지내다 7개월이 지나며 ‘이른 둥이’를 낳고 말았다. 인큐베이터에서 얼마를 지내고 집에 온 아기들이 어디가 불편한지 울고 또 울었다. 결혼생활의 낭만을 누릴 틈 없이 사는 주현 씨를 보며 안쓰러움을 감출 길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까지 왔네요”라고 말하며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기들은 친정 엄마와 주현 씨가 하나씩 맡아 돌보았다. 아기 아빠도 늘어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 돌아오면 쉴 틈 없이 거들었다. 산모의 몸이 잘 회복되지 않아 계속 병원을 다녀야 했고,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들도 저체중으로 예민한 모습이었지만 그 가족은 참 잘 견디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짜증내는 말 안하고 한탄하지 않고 지내는 모습이 ‘아, 신앙인이구나.’ ‘참 좋은 사람들이다’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참 다행이에요
어려울 때는 힘든 일이 몰아서 왔다가 모르는 사이에 하나 씩 풀려, 어느 날 보면 완연히 달라진 것을 느끼는 것처럼, 한 2년이 지나며 아기들이 정상에 가까워지고 주현 씨 얼굴도 옛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정아버지가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하셨다. 몇 개월간 움직이지 못하고 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딸과 아기들을 돌보느라 몇 년을 애쓴 주현 씨 친정엄마가 얼마나 낙담이 되실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주현 씨 친정어머니는 “한 여름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경과가 괜찮다니 감사해요.” “아기들이 이만큼 큰 다음에 이 일이 일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라며 연방 다행이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작은 체구의 조용한 분에게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딸 주현 씨의 긍정적이고 담백한 삶의 자세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감정도 습관이라고 한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지난번에 내가 대처했던 기억을 떠올려 다시 그렇게 한다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이 가족은 늘 다행이고 감사한 부분을 찾아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된 거같이 보였다.
어려운 일, 당황스러운 일, 힘든 일에 대해 유연함과 인내로 대하는 모녀는 작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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