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3,500만 정도의 난민이 있고 그중 5천명 정도가 한국 땅에 와 있습니다.

대한민국 땅에 와 있는 ‘난민’들, 이들은 누구이며 하나님은 왜 이들을 한국에

보내셨을까요? 우리 곁에 와 있는 난민들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난민의 다른 표현은 ‘피난민’입니다. 재난, 전쟁, 박해 때문에 자기가 살던 땅에서 살지 못하고 원하지 않은 곳으로 강제 이주하게 된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부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재난의 역사이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는 늘 난민이 존재했습니다. 전쟁은 끝나도 난민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국제사회는 난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49년 12월에 UN총회에서는 국제기구인 유엔난민기구(UNHCR)를 만들었고, 1951년도에는 제네바에서 여러 나라 대표들이 모여서 난민 협약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UN에서 규정한 난민의 범위로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3천5백명 중 1천명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로 피난하지 못하고 국내에 있어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난민’ 범주에서 빠집니다. 충격적인 것은 전쟁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은 범위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 빠집니다. 환경난민, 기아로 인한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에 있는 난민들도 빠집니다. 결국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는 아주 좁고 소수만 혜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난민들이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 여러나라에 3,500만이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약 5,000명의 난민이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2,500명은 난민이 아니라고 거절당했습니다. 거절당한 이들은 다시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입장, 돌아가면 또다시 박해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해합니다.

 

여기 오게 하신 뜻은?

여기에 ‘피난처’ 사역의 출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얼 하라고 하시는지에 대한 소명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나라,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집에 가세요, 한국정부가 난민이 아니라고 하는데…” 하며 그분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네 나라에서 집도 땅도 다 빼앗기고 남의 나라로 왔기 때문에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이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우리처럼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그 사회에서 지도적이고 젊고 용감하고 어떤 뜻을 위해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문제이든 종교문제이든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땅에 온 난민들은 그냥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의 박해와 곤경을 피해 쫓겨 다닐 때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난민들도 이러한 절망감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윗의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 왕을 알아보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이 난민들에게도 그들을 알아봐주고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행복해 할 것입니다.

난민 문제에 있어서 도와주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난민들을 왜 부르시는지, 난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난민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있게 삶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자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피난민’

저는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사단법인 ‘피난처’라는 단체를 통해 난민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는 자신이 가야 할 곳에 갈 수 없다는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사람과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분들은 치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치료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여러 가지 심리치료와 구제, 전도를 할 때 이분들이 마음을 엽니다.

물론 처음에는 마음을 잘 열지 않지만 우리가 꾸준히 이들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난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과 말씀을 주시는 것들이 많습니다. 난민이라는 측면에서 성경을 연구하다보면 난민이 아닌 사람이 없어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 다윗 왕, 예수님까지. 예수님조차도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갔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난민된 사람들을 “네 몸처럼 돌봐라” 하십니다. 또 마태복음 25장에서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헐벗었을 때, 굶주렸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나에게 한 것과 같이 난민에게 한 것을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어 우리나라로 부르신 것이고, 우리가 그들의 삶의 자리에 들어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분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기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편 1절)

난민 사역은 우리에게 주신 접촉점입니다.

 

이호택

서울법대 출신으로 1993년부터 중국과 한국 땅에서 난민된 사람들을 보듬던 중, 소명을 깊이 깨달아 ‘피난처’를 설립, 난민 섬기기에 온 삶을 바치고 있다. 아내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과 함께 일가 청년상, 아산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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