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무통주사를 달고 죽음을 기다리던 말기 암 환자를 찾아갔습니다.

‘나의 노래가 무슨 의미가 될까…’ 하나님을 바라며 병실 문을 노크했습니다. 지인의 말대로 그분의 모습은 마지막 잎새만을 남긴 앙상한 고목나무와도 같았습니다. 관 삽입과 심폐소생술을 거부하고 저항 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그분의 얼굴에선 그 어떤 미련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 그분이 지인에게 “호흡이 기도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지인은 그저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인이 환자분에게 저를 소개하자, 환자분은 입모양만으로 “여기 다인실이니까, 찬송가는 부르지 않았으면 해요”하셨습니다. 고통 중에도 정성과 배려를 잊지 않으시는 모습이셨습니다.

침대에 누워계신 분들께 “노래를 들려드려도 될까요?” 여쭈니 모두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노래, 사람 사는 노래

어린 시절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그 한 소절에, 환자분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환자분은 두 눈을 감은 채 마음으로 노래를 곱씹으며 어린 시절로의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개 넘어 또 고개 아득한 고향.” 동요가 한 곡씩 끝날 때마다 환자분은 “아멘!”으로 화답하셨습니다.

어디선가 또 다른 코러스가 들려왔습니다. 침대에 누워계시던 환자분들의 가느다란 목소리입니다.

사람 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어느새 환자분의 눈물은 맑게 솟는 샘물처럼 뺨을 타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 해.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그렇게 그 노래는 인생의 마지막에 부르는 부부의 美완성 노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라, 일상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열매이겠거니. 고통이라는 얼굴로 찾아온 병상에서의 시간들은 영원으로 돌아가는 영혼에게 가장 아름다운 채비의 시간이 되겠거니.

인간은 노래할 때 가장 순수한 기쁨을 맛본다고 했던가요. 만화 같은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자 침대에 누워계시던 환우 분들이 마치 홍콩 귀신 강시처럼 일제히 벌떡 일어나 약속이나 한 듯 “앵콜”을 외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그분들의 쉼에 방해가 되지 않아서 감사했고, 더 나아가 모두가 지나온 시절로 함께 소풍을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노래는 영혼의 양식. 미운 사람도 곱게 보이고, 고통을 잊게 되고, 정신도 맑아지고, 그러니 노래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공유할 수 있는 어린 시절 노래와 사람 사는 노래를 불러 줘서 고맙다고.

병실 맨 끝에서 소리 없이 듣고만 계시던 할아버지 환우분이 “모래를 걸어오는 엄마. 뭐, 그런 노래 있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섬집 아기’라는 노래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엄마를 그리워하셨군요. ‘엄마’라는 단어는 참 그리운 단어입니다. 세상 떠날 나이가 되어도 “엄마”라는 단어 앞엔 치맛자락을 붙들던 어린 아이 시절로 돌아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노래하는 시간이 갈무리 될 즈음 환자분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탁을 하나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오면 축하하려고… 아내의 생일이 3일 지났는데…”

아내 분은 남편의 그 말에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생에 있어 남편과의 마지막 생일이라 더욱 가슴 아프셨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남편과 아내와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

별똥별을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알퐁스 도데는 노래했지요. 하물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마지막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분 안에서 죽음이란 아름다운 절망입니다.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글이 독자에게 읽힐 즈음이면 이 환자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영원 속에 핀 한송이 꽃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병이 없으면 참된 깨달음이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안 올 수 도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병은 신이 허락하신 은총입니다.

누군가 모든 이에게 사랑 받는 얼굴은 절세 미소라고 했습니다. 생애 끝에 그런 절세 미소가 영원한 꽃이 되고 향기가 되는 우리가 되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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