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김밥집 하나

제가 근무하는 학교 앞에 작은 김밥집이 하나 있습니다.

워낙 음식점이 많은 동네라 경쟁적으로 싸게 팔기 마련인데, 몇 평 되지 않는 그 집은 야채김밥 한 줄이 이천 오백 원입니다. 소고기 김밥이나 참치 김밥을 사먹으려면 훌쩍 단가가 뛰지요. 하지만 저는 그 집을 즐겨 갑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김밥 속재료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기계적으로 마는 다른 집들에 비해 차별화된 모습 때문이지요. 엄마 집 부엌처럼 툭 트인 주방에, 오는 손님의 양에 따라 그 때 그 때 얼른 썰고 지지고 볶는 서너 분의 모습이 참 정겹고 믿음이 갔습니다. 남자 한 분에, 여자 두 분 그리고 가끔 눈에 뜨이는 젊은이가 열심히 김밥을 맙니다.

아이 학교 보내놓고 한 시간도 넘겨 출근한 뒤에 학교 앞에서 어정쩡하게 먹는 아・점(아침 겸 점심)인지라 제가 김밥을 먹는 시간은 늘 한가합니다. 대부분은 저 혼자만 손님인 경우죠. 자주 가다보니 가끔은 그분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됩니다. 슬쩍 관계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어보는 것이 실례이기도 하고, 또 제가 그리 나서서 묻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그 때 그 때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들만 모았습니다. 그동안의 조각정보에 따르면 부부와 혼자가 된 처제 사이더군요. 가끔 보이는 젊은이는 부부의 아들인 듯 했습니다. 대학생인지 수업 간간이 부모님을 돕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

유난히 이 가족에게 눈이 가는 까닭은 그분들의 표정과 말 때문입니다. 행복이 가득한 얼굴에 콧노래가 끊이질 않습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도 차고 넘칩니다. 더 미루면 고생한다고 얼른 치과 가보라는 형부에, 한창 바쁜 시간인데 점심시간 끝나고 가겠다는 처제의 화답! 그걸 들으며 언니는 괜찮다고 얼른 다녀오라고 기어이 여동생 등을 떠밀어 내보냅니다. 그러고서 더 바빠진 손을 놀리면서 부부는 혼자 된 여동생이 안타까워 소망을 담은 이야기를 서로 건넵니다.

가끔 들린다는 젊은 청년은 또 얼마나 예쁜지요. 여대 앞이라 김밥 장사하는 부모님을 돕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한창 멋 부리고 폼 잡을 나이인 그 청년은 언제나 벙글벙글 선한 웃음으로 나르고 쓸고 닦고…. 제 또래 여학생들 앞에서도 깍듯하게 인사하며 몸도 가볍게 작은 분식집을 가득 채웁니다. 배달도 하는지 근처 옷가게나 학교 안까지도 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 참!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환해지는 그 가족을 보면서 그들이 전해주는 해피 바이러스의 출처가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가족끼리 하루 종일 붙어서 그것도 고된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짜증도 나고 부딪힐 일도 많은 법이니까요. 비결이 뭘까?

 

‘서로가 함께’가 답

그러다가 엊그제 아침 저는 답을 알아버렸답니다. 하늘이라도 뚫린 듯 비가 억수로 내리던 아침에, 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지 꼼짝하기도 싫은 날씨였는데…. 아침부터 주문이 밀렸는지 깁밥 속재료가 동이 난 상황이었나 봅니다. 손으로는 열심히 김밥을 말면서 처제가 볶은 당근과 오이, 계란부침이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는 얼른 당근을 깎고, 아빠는 계란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모처럼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아들은 빠르게 일어나 오이를 썰었죠. 그 상황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절 홀렸습니다. “엄마는 당근 깎고~ 아빠는 계란 부치고, 아들은 오이를 썰어요~” 도대체 음정 박자 완전히 무시한 그 곡조가, 시적이기는커녕 그야말로 일차원적인 표현의 그 가사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 어떤 음악보다도 황홀했습니다.

서로가 함께! 답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옆에서 신문만 보시면서 현금 생기면 들고 나가야지, 그 마음에 가게에 나와 있다면 그건 ‘서로가 함께’가 아닙니다. 엄마가 혼자 한숨을 푹푹 쉬며 당근도 깎고 오이도 썰고 계란도 부쳐야 한다면 어찌 콧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부르지 않으니 슬쩍 앉아서 카톡이나 해야지, 그런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미루는 사람 없이 나서서 제 몫을 하며 서로가 함께 짐을 지는 생활, 그 가족은 일상이 늘 그러했던 겁니다.

가족간의 동행을 돌아보며

요즘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가정이라 하루 종일 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유난히 ‘가족’으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니까요. 신문을 보니 돌아갈 집이 없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14만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많아봐야 열여섯, 열일곱 살인 아이들은 1997년 IMF 이래 급격하게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해체된 무렵에 태어났던 아이들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가족이 그리워 그런 아이들끼리 ‘팸’(패밀리의 줄임말)을 만들어 사는 게 또래문화가 된 지경이라는데…. 어른 없는 아이들만의 공동체는 많은 경우 불안정하고 시행착오가 많고 서로를 다치게 해 ‘청소년 팸’은 사회문제로도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죠.

사실, 가정 파괴의 근본 원인은 아버지의 실직도, 엄마의 바람도 아닙니다. ‘네 덕을 봐서 내가 좀 더 편하려는’ 자세가 더 근본적인 이유지 싶습니다. 가족끼리도 ‘역지사지’가 안 되는 집을 참 많이 봅니다. 심지어 ‘희생이 덕목’이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편한 동안 다른 가족 구성원이 그만큼 더 힘겹고 애쓸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그런 엄마, 그런 아빠, 그런 아이들은 ‘너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고 서로를 비난하죠. 그러던 집에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와르르, 무너질 밖에요.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감정적 유대가 없으니 자꾸 밖으로 돌 밖에요.

가족 간 동행이 힘겹고 버겁다면, 한 번 곰곰이 살펴보세요. 당신이 아니면 다른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홀로 힘겹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걸 아닐까 하고…. “엄마는 당근 깎고, 아빠는 계란 부치고, 아들은 오이를 썰며~” 콧노래를 부르는 가족은 경제적, 감정적 어려움 따위는 거뜬히 ‘서로가 함께 함’으로 이겨 넘길 겁니다.

백소영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이다. 다양한 문화현상들을 그녀만의 따듯한 시각으로 분석한 강의와 글쓰기로 기독교세계관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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