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품은 오지 마을 학교

오랫동안 기도했던 오지 마을 학교를 찾아갔다. 아이들이 입양한 동남아시아 공산국가의 작은 학교로, 자녀들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세계를 보며,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우선 세 남매가 책임지기로 하고 기도하며 준비했다. 아이들이기에 돈도 없고 사역의 경험도 없었다. 돕는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시작했다. 마음부터 드렸고 기도로 마을의 아이들을 품었다.

몇 년 동안 기도하며 준비한 끝에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동남아시아 여러 도시를 돌아 메콩강을 4시간 동안 거슬러 올라갔다. 우기철이라 불어난 강물을 거스르며 간신히 배에서 내렸다.

숲속에 포근히 안긴 것 같은 작은 마을이었다. 맨발의 아이들이 강가에까지 내려와 이방인의 방문을 환영했다. 산에서 내려와 배가 닿는 곳까지 달려오는 모습이 산양들 같았다. 나무 사이로 얼마나 재빠르게 달려 내려오는지, 저러다 넘어지고 부딪히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지만 비탈진 산도 날쌘 다람쥐처럼 순식간에 오르내렸다. 배낭을 진 우리 아이들이 문제였다. 비탈을 두 손으로 기듯이 엉금엉금 올라갔다. 그곳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네발로 올라오는데도 느리다며 놀려댔다.

 

아이들의 ‘아이다운 섬김’

공산주의 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때문인지 산속 동물들이나 방문할 것 같은 이런 오지 마을에도 작은 학교가 있었다. 변변한 책상도 없고, 교사도 두 명뿐인 학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자부심을 갖게 하는 국가 시설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느 곳이나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언어는 다르고 차림새도 전혀 달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아이들과 마을 아이들은 한 가족이나 된 것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마을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통역도 없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나름 준비한 그림 그리기 시간도 가졌다.

하루는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기가 무엇인지 아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산속의 날짐승과 사는 것은 익숙해도 현대 문명의 기기들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기가 없으니 전자 기기는 당연히 없고, 외부와 고립되어 살아가느라 머리 아프게 생존 경쟁에서 고통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그런 처지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를 이어 입었을 티셔츠는 다 구멍이 나 있고 바지의 엉덩이는 다 해어졌지만 누구도 옷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바나나 나무가 있는 것으로 만족해했고, 야자나무를 오르내리며 놀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했다.

하루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이 마땅치 않자 어른 몇이 숲속으로 들어가 멧돼지를 잡아왔다. 그것을 굽고 국을 끓이고 한상 가득 음식을 만들어 내왔다. 그런데 식사시간이 되자 온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이 우리가 앉은 상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고 앉아 있었다. 몇몇 원로와 우리만 앉아 식사를 하는데 온 동네 사람이 구경하고 있으니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신경이 쓰여서 같이 먹자고 손짓을 해보았지만 하나같이 괜찮다며 손사래만 쳤다. 알고 보니 그들은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의 식사가 끝나야 상을 밖으로 내갈 수가 있고 그제야 주민들이 남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부터 우리의 식사는 불과 몇 분 만에 끝나 주민들의 식사시간이 빨라졌다.

 

작지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회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주겠다며 준비한 것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말이 오케스트라이지 피리와 탬버린 같은 소소한 악기들로만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악기도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것이어서 음악을 만들어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피리를 처음 본 아이들은 소리를 낼 수 없으니 거의 토하기 직전까지 힘을 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세를 잡아주고 시범을 보이며 연주자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날씨도 무더워 피리소리 내는 법 가르치다가 다 졸도할 지경이었다.

며칠 동안 훈련한 결과, 간신히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음을 따라서 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마을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는데 연주곡의 한 소절도 따라서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마을 전체 연주회를 예고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소절도 못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생각이었다. 주민들은 자기 자녀들이 피리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놀라워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날 저녁, 예고된 연주회가 마을 한가운데서 열렸다. 주민들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자기 자녀들이, 동생들이 보여줄 장기 자랑을 기대감으로 기다렸다. 아이들은 처음 하는 연주회가 긴장되었던지 얼굴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드디어 연주 시작.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탬버린과 타악기도 울렸다. 음도 안 맞고 박자도 틀리는 연주회였다. 연주곡도 다 할 수가 없어서 첫 소절만 몇 번 반복하는 하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루어낸 오지 마을 첫 번째 오케스트라 연주회였다.

아이들의 피리 소리를 이어서 지휘자가 연주를 했다. ‘Amazing Grace’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낡고 가난한 이 마을에도 주 은혜가 밀려올 것을 기대하며,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을 바라며 살아갈 이 마을의 영혼들을 위해 찬양은 잔잔히 이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리고 다시 오지마을 아이들 오케스트라는 우렁찬 피리소리로 화답했다. 언젠가 그때가 되면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믿는다는 듯이 아이들은 힘을 다해 피리를 불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 책임자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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