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날로그 음악 바람이 심상치 않습니다. 조용하지만 차가운 디지털 음악에 대한 염증 반응이라고 할까요. 약간의 잡음이 섞이고 둔탁한 것 같지만 감성을 따뜻하게 합니다. 이에 가왕 조용필도 신곡을 LP 한정판으로 출시했습니다. 턴테이블도 없는 젊은이들이 이 LP판을 구입했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전남 보성 천봉산 골짜기에서 20년 가까이 암 환우들의 재활을 도우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암 투병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자연식 식단과 더불어 매 끼니마다 아날로그 음악을 들려줍니다. 좋은 음악은 침샘을 자극하여 잃어버렸던 입맛을 빨리 회복시킵니다. 자연스럽게 침과 섞인 음식물들은 소화가 잘 되어 영양을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면역력을 증대시킵니다. 그래서 고통 중에 있는 암 환우들에게 즐거운 자연식 식사와 아날로그 음악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인 존 다이아몬드 박사는 음악이 최고의 치료법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Your body doesn't lie).”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1979년에, 그 역시도 치료에 사용하고 있던 기존 곡들을 디지털 CD로 대체했습니다. 카루소, 존 맥코맥, 하이든 심포니 등. 그런데 이전과는 상반된 결과가 생겼습니다. 이전의 환자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긴장을 풀고 에너지를 변화시켜 더 건강한 몸으로, 즉 긍정적인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음악을 디지털로 들려주었더니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과학적인 증명을 위해 페스윌라의 피아노곡을 피아노 실연, LP, SACD, 일반 CD로 들려주면서 어깨와 연결된 삼각근육에 대한 근력 측정을 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위의 순서대로 근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분명 디지털 녹음 기술은 몸의 에너지를 떨어뜨리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요즘 중·고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음원은 CD보다 소리 전달 과정을 더 생략한 기계음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킬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듣는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음악은 내면적 도덕성의 전도현상(A reversal of inner morality)을 무의식 중에 형성시킬 수도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좋은 것이고 증오는 나쁜 것이다’, ‘건강은 좋은 것이고 병은 나쁜 것이다’와 같은 상식적인 가치가 디지털 음악을 오래 들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하게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요즘 청소년들이 참을성이 없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치달아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본질

‘빠르게’, ‘많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가치인 편리성과 상업성의 폐해가 흉물처럼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에 급급하다보니 사회전반에 부실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때 기계문명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리라고 낙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계문명에 의해 인간은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와가 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노릇 하듯이….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 때문에 보급되고 있는 디지털 피아노도 문제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디지털 피아노를 치면서 기계음에 익숙하게 되면 결국은 인간의 감수성이 메마르게 되고 기계적인 인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예술 활동을 통한 전인격적인 교육을 도모하고자하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계적으로 조작된 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는 오직 자연의 소리만 존재했습니다. 창조 도구인 ‘말씀’도 죽은 언어가 아닌 생명의 언어, 아날로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민중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 땅에 몸으로 오셨습니다. 결국, 참 사랑만이 생명을 창조하고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아날로그적인 언어는 시·공간 안에서 함께 경험되는 공동체적인 사랑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만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동인이 되고, 결국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게 합니다.

아무리 조화(造花)가 아름답다 할지라도 또 다른 생명을 만들지 못하듯이, 인위(人爲)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신위(神爲)보다 어찌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불편을 감수하고서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자연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인류가 살 길입니다. 인간의 생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천민자본주의적인 삶의 행태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서부터 화려한 외양이나 편리보다는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교육 현장에서 길러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가 자본주의적인 상업성에 편승하지 말고, 생명을 회복하고 충만하게 하는 진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명 중심의 통전적인 선교를 통해 아름다운 전형(典型)을 만들어 삶의 열매를 맺도록 돕는 아날로그 교회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가야 할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5장 4절).

 

이박행 목사

18년 전,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두레공동체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다가, 전남 보성 천봉산 자락에 들어가 점점 늘어가는 암환우들을 돌보는 전인치유센터를 아름답게 세워 운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환경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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