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짜이 목사의 ‘낡은 트럭’

아침 5시, ‘깜짜이’는 변함없이 낡은 트럭을 끌고 나타났다. 짐칸에 의자를 설치하고 승객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이 트럭이 그의 삶을 지켜 주었다.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운 것도 이 트럭이다. 그는 사거리 코너에 대기하고 있다가 새벽시장으로 나가는 상인을 태우고 달려갔다. 하루 종일 이런 손님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목사가 장사를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성경을 가르치는 것만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그렇게 돈을 버느라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사역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네 상황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깜짜이에게는 트럭이 유일한 생존 도구이다. 그러면서 사역을 위한 경제적인 필요를 마련할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주님 한분만 바라봐야 하는 ‘고난의 길’

이 나라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들 말한다. 예수를 믿는 즉시 그는 핍박의 대상이 된다.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동네 주민들이 집에 불을 지르거나 한적한 곳에서 돌을 던져 머리를 깨뜨리기도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역자로 헌신하는 것은 인생의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누구도 이곳의 사역자를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공안들의 추적 대상이 된다. 이런 사역자가 얼마나 고통을 당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오직 주님 한분만 바라보며 이 길을 가야만 한다. 실적도 아니고 과시도 아닌 오직 주님이 찾고 찾는 영혼만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달려가야 할 목표이다. 깜짜이는 그렇게 사역하는 목사이다.

깜짜이는 메콩강을 따라 올라가며 고산에 있는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이기도 하다. 그가 개척한 마을 교회는 벌써 30여개에 이른다. 방문한 마을들은 수도 없이 많다. 산악을 다니며 사역하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임으로 그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아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메콩강 상류는 가는 길도 험하지만 마을들이 고산에 위치해 있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영혼들이 많다는 이유 하나가 그를 이런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쏨싹’

그가 도시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뿐이다. 일주일동안 일을 하고 주일에 교회에서 사역을 한다. 일을 하는 동안 성경공부를 해야 하거나 심방이 필요하면 트럭을 세워두고 달려간다. 마을로 전도하러 떠날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보충하려고 그는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을 한다. 이른 새벽에는 일을 나가는 주민들이 주고객이고 늦은 밤에는 관광객이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을 한다. 그 일은 새벽까지 이어질 때가 많아 트럭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다.

트럭을 운전하다 만난 승객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은 사람도 많다. 그중의 한 사람이 ‘쏨싹’이다. 그는 고산의 고립된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깡촌 사람’이다. 욕심이 많은 아버지 때문에 쫓기듯이 도시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1년을 지내고 나니 그는 도시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쏨싹은 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방황했다. 그때 길거리에서 깜짜이 목사를 만났다. 깜짜이는 쏨싹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같이 살며 그에게 예수를 전해주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쏨싹은 변화되어갔다. 인생관도 바뀌고 삶의 의미도 깨달아갔다. 그는 이제 촌사람 쏨싹이 아니었다.

 

메콩강을 따라 복음 전해

깜짜이는 쏨싹을 자기가 공부했던 성경학교로 보냈다. 그곳에서 2년간 성경을 공부하며 사역자로 훈련받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그를 집에 데리고 살면서 같이 트럭을 운전했다. 그러면서 고산 마을들을 같이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쏨싹은 더 뜨거웠다. 자기가 살던 고향마을부터 시작해서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드나들던 마을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작은 마을 교회들이 개척이 되었다. 그곳에 리더들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찾아가 성경을 가르쳤다. 그리고 가정교회 지도자들로 세워갔다. 그런 마을들이 메콩강을 따라 계속 북상하고 있다.

깜짜이는 그런 사역의 열매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한 마을이라도 더 교회가 개척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는 것도 기쁨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산다는 것

나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그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한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언론에 나타나는 일도 없다.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지도 않는다.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역들은 과시용도 아니고 어디에 보고하려고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한 영 혼을 찾아가는 목자의 심정으로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촌노(村老)에 불과하지만 그는 위대한 주님의 대사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 땅에서 어떤 물질적 댓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천국에서 받을 상급만을 기대하며 험한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다.

숙소로 돌아오던 늦은 밤, 사거리 코너에서 다시 만난 그는 또 다른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얼굴은 하루 종일 그을리고 지쳐서 핏기도 다 빠져 나가 있었다. 그러나 밝게 웃는 그의 미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손님이 자리를 잡고 출발하려는데 트럭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몇 차례 구동엔진 소리가 거칠게 반복되고 나서야 겨우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그는 어디론가 함박웃음을 띄고 사라져갔다. 지친 육체도 한 영혼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듯 했다.

 

박태수

CCC 국제본부 개척선교팀 책임자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지구촌 땅 끝을 다니며 미전도종족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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