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야기 하나

춘옥 씨는 6월 이맘때가 되면 옆집에 살던 노부부가 한스럽게 울던 기억이 난다. 생활력 강하고 정직한 두 분은 이북서 피난 내려와 삼남매를 두고 사업을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서로 큰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는데, 몇 해가 지나서야 그 사연을 듣게 되었다.

당시 행정구역이 강원도였던 원산에서 부부는 딸 둘을 키우며 바닷가 가까이에서 배 한척을 가지고 고기를 잡아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근처에는 형님도 역시 배를 가지고 있어 함께 도우며 어렵지 않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는 총성으로 난리(전쟁)가 났음을 알고 모두들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짐을 싸 리어카에 싣고 머리에 이고. 그런데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배를 타고 가자고 했다. 형님 댁 배와 두 척이니 꽤 여러 가족이 갈 수 있다고.

배가 떠날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마구 올라탔다. 그야말로 난리 통에 이런저런 말이 통하지 않았고, 배 안은 숨쉬기도 힘든 북새통이 되었다. 영문 모르는 어린 딸들은 사람에 깔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가기는 힘든데…’ 큰집 배는 좀 나아보였다.

“옜다. 너희는 큰 아버지 배타고 와라.” 아버지가 두 딸을 안아 냉큼 큰집 배에 옮겨 앉혔다. “금방 만나자우. 바로 옆에서 따라 올 거니깐.”

그런데 큰집 배가 따라오지 않는다.

어? 어? “형님! 형님!”

아무리 소리쳐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배는 점점 멀어지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라도 오겠지. 늦게라도 기다리면 만나겠지’하며 살아온 세월. 한참을 지나서야 그 배가 북으로 올라갔다는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누가?

이제 부부는 남한 생활에 자리가 잡히며 아이도 셋이나 낳아 잘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6월 이맘때가 되면 한바탕 가슴 속 딸들 생각에 원망과 한을 부르짖곤 한다.

“자기 딸 간수도 못하고 난리 통에 남의 배에 옮겨 태워?”

- “금방 올 줄 알았지.”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애비야?”

- “그래, 난 애비도 아니다.”

“우리 애들 어떻게 살았을까?”

- “큰아버지가 자기애들하고 같이 키웠겠지.”

아직도 다 하지 못한 전쟁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숨어 있을지….

 

전쟁 이야기 둘

여든이 넘도록 세탁소 하는 딸을 도와 옷 수선을 하시는 할머니 이야기다.

“우린 임진강을 건너 피난을 왔지요. 그 강은 폭이 좁아 덤벼들 만한 곳이 있어요. 물살이 무척 셌는데 돈 받고 길 안내하는 사람이 거기까지 우릴 데려다 주고 돌아가요. 강둑에 여러 사람들이 서서 앞에서 하는 대로 하는 거예요. 짐은 다 버리고 목에 맬 수 있게 한 것만 매고 손을 꽉 잡고 물로 들어서요. 일렬로 계속 가야 중간에 발이 안 닿는 물속에서도 앞 뒤 사람 손 의지해 둥둥 떠서 지나가는 거지요. 손을 놓치면요? 그냥 떠내려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죽을힘을 다해 서로 잡고 건넜지요. 캄캄한 밤, 차갑고 센 물살. 누가 물에 빠졌을지, 몇 사람이나 그런 안내를 받았을지 생각할 틈도 없어요. 그날 밤을 생각하면 살면서 못할게 없더라고요.”

 

 

전영혜 객원기자

작은 천국 패밀리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세월을 지내며 작은 천국의 모습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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