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일하며 공부하며 가정을 돌보아온 정인 씨에게 40대 중반에 큰 복이 임했다. 병원서 남편에게 맞는 장기기증자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기적 같았다. 가족도 조건이 안 맞아 몇 해를 이렇게 지냈는데 어떻게 모르는 기증자와 연결이 되는가.

병약한 아빠와 철든 아이
살아온 지난날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결혼 당시부터 신장이 안 좋아 에너지를 늘 아껴 살아온 남편, 이십 여 년을 스트레스 주지 않고 과로하지 않게 하려 조심조심 대해온 아내가 아니었나. 그런데도 차츰 신장기능이 떨어져 몇 년 전부터는 투석을 통해 몸을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씩 병원서 지내는 일은 본인도 힘든 일이었지만 가족 모두 일찍 철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용하게 그림을 스케치하며 바쁜 엄마를 이해해준 아이가 대학에 순하게 입학한 것이 기쁘지만 않았던 것도 입시를 아이 혼자 치러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장이식으로 젊어진 남편
장기기증자 얘기를 들은 날부터 정인 씨는 매일 예배를 드리며 그분을 위해 축복하고 감사했다. 꿈같이 느껴지던 신장이식-성공이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놀라운 의술, 생각할수록 감사한 기증자로 인해 새 인생이 열린 것이다. 정인 씨 가족에게 새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복기간이 지나자 남편은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꺼내 놓았다. 힘과 용기가 솟아오르는 모양이었다.
“여보, 우리 가족 여행 갑시다.”
“아침에 뒷산에 다녀와서 일과를 시작하지.”
정인 씨는 건강해진 남편을 바라보며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그래, 여행도 하고 운동도 합시다. 외식도 하고 쇼핑도 같이 해요.”
그런데 남편은 회복 후 해야 할 일 목록이 있었던 모양이다. 숙제처럼 이어지는 요구가 정인 씨 생활을 힘겹게 하기 시작했다. 50세가 가까이 되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속도가 느려지는데 반해 갑자기 활발해진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어리둥절해졌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다 따르기에는 정인 씨가 직장일,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엔 야외로 나가서 지내자고 하니 남편의 병상을 예배로 지켜온 정인 씨가 따르기 힘든 일이었다. 문득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건강이 최우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컨디션이 조금 저조하다 느끼면 과민하게 건강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 모두를 애태우기도 했다. 그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리며 병을 꿋꿋이 바라보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생명에 연연하는 딴 사람으로 보였다. 이에 정인 씨는 “난 그동안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이런 감격도 맛보게 하셨으니 언제라도 부르시면 기꺼이 갈 마음이에요”라고 하자 남편은 언짢은 얼굴을 하며 “이제 좀 제대로 살아보려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감격에서 일어서기
정은 씨는 감격에서 일어나 다시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다. 그간 병약한 남편 옆에서 가장처럼 살아왔는데 이젠 젊은이처럼 된 남편의 철든 아내로서 다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 씨는 기도한다.
“새 삶을 주신 주님, 이 가정의 주인 되셔서 나아갈 길을 알게 해 주옵소서. 가족이 함께 건강을 누리며 그 기쁨과 감격을 이웃에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 주옵소서.”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작은 천국 패밀리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세월을 지내며 작은 천국의 모습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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