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 젊은이
요즘 젊은이들은 세 가지를 포기하고 산다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 스펙을 쌓느라 바빠서 낭만적 사랑에 빠질 시간과 감정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연애를 하자니 데이트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랍니다. 그것을 줄여 ‘삼포’라고 하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결혼은 더욱 힘든 일이라고 하네요.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시절이고 보니 모두가 구조조정 당하지 않으려 쉼 없이 자기를 업데이트하고 또 밤낮으로 직장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경쟁력이 있어야,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대체되지 않으니까요.
둘이 함께 벌어도 집 장만에 결혼식 비용에, 순식간에 ‘억’ 소리 나는 그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도 역시 ‘포기’라 합니다. 그뿐인가요? 어찌어찌 결혼한다 해도 직장상황을 따라 남편과 아내가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게 된다면 결혼을 하고도 따로 살아야 하는 마당입니다. 어려웠지만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성공한 젊은 부부라면 이젠 출산의 벽에 부딪힙니다. 다둥이를 축복하고 ‘내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은 동생입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공익광고를 해도, 육아를 온통 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에서는 경제활동이 급한 젊은 부부에게 ‘출산’은 또 하나 포기해야 하는 목록입니다. 하여 늦은 삼십 대 사십대 초반이 되어도 ‘모태솔로’로서, ‘골드미스’로서, 혹은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으로서 그렇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이 땅의 어버이, ‘삼무’세대
그런가하면 이 땅의 어버이들, 소위 베이비부머들은 이른바 ‘삼무’의 세대라고 하네요. 그 이전 세대가 성실하게 일하면 은퇴가 보장된 세대였던 반면, 구조조정이나 고용유연성을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인지라 많은 이들이 은퇴 이전의 나이임에도 ‘직장 없음’의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 베이비부머 세대까지만 해도 일하는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의 역할분담이 상당수였기에, 남편의 급작스런 실직이나 조기은퇴는 가정의 붕괴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동안 바깥 일 하느라 쉴 새도 없었던 우리의 성실한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의 부재를 감당하며 가정의 천사로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치는 일을 ‘전적으로’ 수행했던 어머니들은 정작 서로를 향해 애정과 배려, 나눔과 소통을 할 시간과 여력들이 없었다 해요. 하여 남편의 급작스런 실직으로 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경제적 이유로 헤어진다 말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만큼의 관계성의 기반이 약한 까닭이 아닐까,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세대는 ‘직장 없음’ 뒤에 이어 오는 ‘사랑 없음’ 혹은 ‘배우자의 상실’이라는 또 하나의 ‘무(無)’를 경험한답니다. 행여 어찌어찌 부모의 의무를 다하며 함께 늙어가는 행운을 가진 부부들이라 해도,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신들의 성실한 노동의 대가를 온통 다 자녀양육과 뒷바라지에 쓴 까닭에, 노후대책이 ‘없다’고 하네요. 하여 아직 노년기도 접어들기 전에 직장 없고, 사랑(배우자) 없고, 노후대책이 없는 이 땅의 50대들은 젊은이들과는 또 다른 상실감을 갖게 된 세대라 합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맞는 ‘가정의 달’
어쩌면 좋을까요? 어김없이 5월은 찾아왔는데….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로 가득 찬 ‘가정의 달’이 우리 앞에 또 다시 주어졌는데, 축복이어야 하는 이 달을 맞이하며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가족을 만들기도, 가정을 지켜나가기도 힘든 구조인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니 말이에요.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라지요?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아이 한 번 안 낳아본 젊은이들이 “윤후가 너무 귀여워~” “난 준수 같은 아들이 있음 좋겠어.” 이렇게 외치며 아빠와 아이의 훈훈한 가족 여행에 열광합니다. 알콩달콩 사는 결혼생활이 현실에서 힘든 이들은 또 ‘우리 결혼했어요’를 외치며 가상으로 낭만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예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연애, 결혼, 가정의 모습이 화면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요. ‘가족’은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된 ‘함께 하기의 방식’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의지하며 평생 소유도 나누고 권위도 나누고 생명을 함께 기르는 정서적, 경제적 삶의 공동체! 이 가족이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푸르른 이 5월에, 우리는 이 오래되고 절실한 가족의 ‘함께 살기’ 방식을 어떻게 다시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한 사람이, 혹은 한 공동체가 온전히 다 답할 수는 없는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숙제라고 생각해요. 경쟁이 개별화되고 속도를 늦추면 바로 대체되어버리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가족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그 ‘같이 살기’의 방식 속에 특정한 성(그동안은 여성이었죠)을 집안에 전업으로 배치하는(전업주부) 전략은 21세기 사회구조와 더 이상 맞지 않는데…. 우리는 어떤 제도적 장치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우리 공동의 숙제겠죠? 이번 ‘동행길목’엔 이렇게 함께 풀어나가야 할 큰 숙제를 던져봅니다.

백소영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이다. 다양한 문화현상들을 그녀만의 따듯한 시각으로 분석한 강의와 글쓰기로 기독교세계관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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