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놀랄 발언
아흔이 넘은 승혜 씨 엄마, 몸이 연약해 지는 걸 막을 길 없지만 아직 성경 말씀을 읽고 은혜를 나누며 스스로를 돌아볼 만큼 맑은 정신을 갖고 있다. 자녀 손들이 여러 나라에 살고 있어 결혼식 등 가족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름 붙여 모이다보니, 승혜 씨 친정은 엄마 중심으로 매년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별 계획이 없던 올 봄, ‘가족 수련회’ 같은 만남이 또 열리게 된 건 엄마의 놀랄 발언 때문이었다.
“내 장례 때 올 걸 대신 와라.”
죽은 다음에 와봐야 나에겐 아무 소용없으니 이번에 보자는 것이었다. 엄마의 강력한 발언에 주섬주섬 비행기 표들을 끊었다.

자신의 부고를 낸 할머니
승혜 씨는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영화가 생각났다. 자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는 자녀와 친지를 그리워 하다가 주인공 할머니가 자신의 부고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미리 몇 사람과 연출해서 장례식장에는 곱게 장식한 빈 관을 앞에 놓았다. 본인은 검정 망사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조문객처럼 한쪽에 앉아 있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 할머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엿듣게 된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됐나. 보고 싶었는데…”
-‘연락 한 번 안하더니 보고 싶었다고?’
“정은 있었지만 성격은 좀 까칠했지.”
-‘뭐라고?’
“유산도 꽤 남겼을 텐데 다 어디로 줬는지,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살았을 때 인심이나 좀 썼으면 좋았을 걸.”
-‘아니, 뭐라?’
“그래도 사리가 분명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 주인공 할머니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럼요. 이웃에 친절한 사람이었어요”라고 변호하며 돌아다니다 드디어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장례식장을 파티로 바꿔 만남을 기뻐하는 영화로 기억된다.

가족, 그리고 그 다음
연로해지면 이렇게 해서라도 자녀와 친지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될 듯했다. 그러나 승혜 씨는 이번 가족 모임으로 마음에 부담이 일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스케줄을 고려할 때, 급하게 두 주간의 시간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부모 공경, 가정 화목을 놓고 하나님께 여쭙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대식구가 명절처럼 만두 빚고 빈대떡 부치고 윷놀이하며 재미있게 지낼 텐데….
승혜 씨는 고민 끝에 집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가족 모임도 좋지만 이미 계획된 일들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족 모임을 포기한 스스로에게 격려의 말이 필요한 시점, 생각나는 분의 말씀이 있었다.
가정 사역의 선두 역할을 하던 분이 선교지로 떠난다고 해서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은 “한국의 가정들에게 열심히 화목을 가르쳤더니, 이젠 가족끼리 너무 뭉쳐 좋아하는 거예요. 행복한 가정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니고 기반일 뿐인데요, 마치 거기서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 자신부터 다음 단계를 향해 선교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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