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잘 못하니까 알아듣지도 못하는 줄 알고 내 주변에서 치매니 뭐니 하며 수군대는 거 다 알아.” 극단 산울림의 연극 ‘나의 황홀한 실종기’의 한 대목이다.

공허한 마음 달래기
인영 씨는 어머니가 계신 실버타운을 방문하며 노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여러 해 같은 곳을 가다보니 몇 분의 노화 진행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길고 지루한 노년을 어떻게 도울지에 마음이 가게 되었다. 흔히 노인 문제를 경제적, 신체적인 것에 집중해서 말하지만, 그 외에 공허한 시간과 마음을 채우는 것이 대다수 노년의 문제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실버타운에는 음악, 미술, 동작을 통한 프로그램이 있어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런 활동이 아무 소용없는 분들도 많다. 흥미가 없어 휠체어에 앉아 왔다 갔다 하는 분, 아예 자리에서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보며 노화도 아이들의 성장만큼이나 다양한 단계와 과정, 양상을 띠고 있어 그에 맞는 돌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길어진 노년의 단계
인영 씨는 어머니와 한 방을 쓰는 임 할머니를 주시하게 되었다. 임 할머니는 깨끗하고 온화한 분으로 그전에 외국 여행 갔던 얘기, 손자들 얘길 잘하시는 분이다. 의사 표시도 뚜렷하고 자녀들과도 소통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2, 3년이 지나며 한숨짓는 모습이 부쩍 늘어 안타까웠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노년이 지루하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 활동에 참석해 그림도 그리고 작품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젠 그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힘들고 귀찮다고 하신다.
임 할머니가 침대에 물끄러미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인영 씨는 생각해 보았다. 움직여 이동할 수 없는 이런 분들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옆에서 애기해주고 눈 맞춰 관심 표현하는 것이 좋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위로가 될 것인가.

노인용 장난감
아하, 장난감이다. 손으로 만지는 말랑말랑한 것, 장식은 없고 콩 같은 촉감이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일본과 선진국에는 이미 노인용 장난감이 나와 있었다. 그러면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서랍을 뒤적이다 오재미를 집어 들었다. 콩이 들어 있는 비니 베이비도 좋을 거 같았다. 또 마트에서 기웃거리다 지팡이 모양의 봉제 장식을 발견했다.
손 놀이할 완구를 들고 실버타운을 찾는 인영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귀찮다고 하지는 않을까.
이젠 앉아있기도 힘들다며 누워 지내는 두 어르신은 작은 봉제 지팡이를 쥐어드리자 아기처럼 좋아하셨다. “예뻐. 이렇게 짚는 거지.”
프로그램이 있어도 참석할 수 없는 분들에게 필요한 장난감.
노인용 장난감이 따로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게 손동작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면 되고,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노인에게 나이 순서를 거꾸로 맞추어 아이들 장난감 중에서 잘 선택하면 될 거 같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소꿉장, 작은 동물 인형들. 이 다음에 그런 걸 달라고 해야겠다고 인영은 마음먹었다.
눈동자가 흐려 보이고 말을 잘 못해도 사는 동안에는 생각하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