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라 불리는 안성기 씨가 정다빈 씨가 자살하였을 때 어느 신문에다 기고한 글이 생각납니다. 배우의 삶을 젊은 시절 한순간에 끝장 볼 것처럼 조급해 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좋은 영화에 캐스팅 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잊혀지기도 하며 사람들 속에 더 깊숙이 기억되고 자리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변희봉 씨는 작년에 <괴물>로 큰 상을 받았는데 배우 인생에 처음이라 하였습니다. 그의 연기경력은 이미 수십 년이 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무명 같은 유명 배우로 살았습니다. 젊은 신인들이 스타가 되고 또 그 별이 묻혀버리는 걸 수도 없이 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변희봉 씨는 늘 조연으로 자신의 자리를 한 뼘씩 늘여가고 확장해 갔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에게도 볕들 날이 왔습니다.
인생이란 짧게 살고 말 일이 아니어서 전쟁 같은 시간이 올지라도 그 시간을 피하지 말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런 전쟁 같은 시간을 지나고 나면 더욱 선명한 자신의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그런 기회를 기다리는 '용기'가 나를 더욱 당당하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지 않은 '국민배우'란 없지요, 그 빛나는 훈장은 세월 없이,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은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다. 아니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어차피 치러야 할 전쟁이라면 승리하여야 하고, 더욱 잘 준비하여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