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입맛도 있어요
알고 보니 어릴 때는 성장기여서 누구나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발육이 좋아 잘 자라는 아이들은 늘 먹을 것을 찾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인숙은 또래보다 키가 큰 아이로 자라면서 입맛에 맞는 음식 먹기를 참 좋아했다. 아버지 밥상에 오르는 보글보글 두부 소고기 찌개, 생선구이, 달걀 프라이, 파란 시금치나 오이 무침은 엄마나 형제들 눈치를 받으면서도 따라 붙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우리끼리 먹는 상에서 국속의 덩어리를 고기인줄 알고 얼른 입에 넣었다가 물컹 된장이어서 속은 느낌을 가진 후에는, 더욱 기다렸다가 아버지가 물린 상에서 뒤늦게라도 먹는 게 나았다.
어른 위주의 분위기
인숙의 집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본 식구도 많은데다가 아버지 회사에 연결된 삼촌, 이모들까지 근처에 살며 왕래하니 이웃에선 늘 잔칫집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 모두의 중심에 선 책임자였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인숙의 옷이랑 빨간 가죽 가방을 집에 온 숙모에게 갑자기 내주는 것이었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아이에게 쓰라고. 당황스럽고 서운했던 심정, 그러나 인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을 더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인숙은 어른들 틈에 서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의 다리까지 밖에 키가 안 될 때 말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던 일, 낮은 자리의 어둡고 답답했던 작은 아이의 심정, 무슨 말을 하려해도 어른들의 목소리는 크고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생각이 난다. 그 때 시원하게 안아 올려 주던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
작은 트라우마도 남아
인숙의 이런 조각 기억들이 성장해 살아가는데 어떤 영향을 입혔을까. 작은 트라우마일지라도 인숙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길은 없었다. 욕심 많은 애로 스스로 여겨 자의식이 좋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먹을 것에 욕심내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편 우스운 얘기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된장을 좋아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된장 덩어리 트라우마 때문인지. 또 학창시절을 지내면서 질문을 하거나 큰소리로 대답하기를 어려워했다.
인숙은 두 아이를 키우며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거침돌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세 가지 문제 모두 아이들 편에서 봐주기만 하면 생기지 않을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욕심쟁이 등의 별명 붙이지 않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반응하기, 작은 소리로 말하는 내성적인 아이의 말도 들어주기, 유모차에 앉아있거나 어른 틈에 있는 작은 아이와 눈높이 맞춰 얘기하기 등이었다. 그러는 중에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들이 재미있게 지나가고 있었다.
트라우마 후 성장
그런데 인숙 씨가 이렇게 자신의 부정적인 경험을 뒤집어 아이들을 돌보며 살던 어느 날, 자신의 문제도 완화됨을 보게 되었다. 식탐이 줄어 있었고 매사에 비교적 욕심내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음이었다. 또한 자신의 얘기를 발표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하고 있었다. 나중에 책자를 뒤적이다 알게 된 것은 이런 것을 가리켜 ‘트라우마(외상) 후 성장’이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숨기고 넘기기보다 직시하며 끊고자 노력하면 성장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외부로부터 온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오다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 원인을 찾고 노력한 것이 성장으로 연결된 것이다. 인숙 씨는 자신의 삶을 학자에게 인정받은 거 같아 기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