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가조찬 특강 내용을 갈무리한 것입니다.

지수로 보는 한국의 위상
2011년에 UN이 HDI(인간개발지수)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15위입니다. 덴마크 16위, 프랑스 20위, 싱가폴 26위, 영국 18위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15위라는 것은 대단합니다. 교육기간, 기대수명, 생활수준, 개인당소득, 건강, 유아사망률 등이 항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선진국입니다. 또한 2011년에 영국의 레가툼(Legatum Prosperity Index)에서 번영지수를 발표했는데, 그 자료에서는 한국이 110개국 중에 24번째였습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7번째로 소위 2050클럽(2만 달러 소득에 5000만 인구)에 가입했습니다. 민주화에 있어서도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시민사회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예술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성악은 세계를 제패하다시피 뛰어나고 또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고 스포츠에 있어서도 우리가 알다시피 금메달 세계 5위,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세계 7~8위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60년 만에 세계 어느 나라도 이룩하지 못한 두 가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고, 둘째는 역사상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바뀐 첫 번째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혜택을 받고 있고, 외국에 나가보면 그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딱 한가지 심각한 약점
딱 한 가지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윤리 수준’입니다. 얼마 전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세계 174개국 중 우리나라가 45번째라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수준과 비교해서 너무 뒤떨어진 윤리 수치입니다. 홍콩 13위, 일본 17위, 대만 37위인데 우리나라가 45위라는 것은 부끄러운 수치입니다. 이 ‘투명성지수’는 ‘부패인식지수’라고도 부릅니다.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2011년 부패인식 경험조사에 따르면 일반국민의 65.4%가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후진국 원인은 ‘윤리 수준’
왜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의 윤리감각이 무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도덕적 암’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암이 무서운 것은 병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계도, 언론계도, 종교계도 다 불감증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아파야 고치는데 아프지 않으니까 죽어가면서도 고치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역시 샤머니즘(무속 신앙)과 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와 샤머니즘의 공통적 특징 첫째는 무신론, 둘째는 내세 없음입니다. 이 두 가지를 서양의 철학자 칸트와 플라톤이 도덕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살피는 전지전능한 신이 있으면 속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세(來世)는 정의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이면 절대적인 정의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세도 없고 전지전능한 신도 없으면 경쟁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게 됩니다. 한국인의 경쟁심은 누가 따를 수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그러나 윤리는 경쟁과 관련이 없습니다. 윤리는 오히려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쟁심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윤리가 발전되기 어렵습니다.
‘경쟁’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돈’입니다. 하지만 가장 하급가치가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나 지혜는 내가 많이 가져도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고급가치’라고 저는 분류합니다. 돈, 명성, 권력 등은 ‘하급가치’입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레가툼(Legatum Prosperity Index)에 의하면 한국인의 생활만족도가 110개 중 104번째라고 나왔습니다. 심각합니다.

도덕성을 책임져야 할 기독교
한 사회의 도덕성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교육, 언론, 정치가 다 책임져야 하지만 사실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책임져야 합니다. 한국의 지배적인 종교는 무엇입니까? 불교가 개신교보다 수치적으로는 조금 앞서지만 실제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정도로는 기독교가 한국의 지배적인 종교입니다. 한국사회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윤리적이 되어야 하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고, 내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야말로 공정하고 정직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고, 초대 교회는 이런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도덕성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한국교회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성공이 한국교회의 실패 원인이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에 맛을 들인 것입니다. 결국 한국 기독교는 한국사회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안 ‘세계 내적 금욕’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쓴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세계 내적 금욕’(innerweltliche Askese)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택해야 할 대안이 ‘세계 내적 금욕’이고, 그중의 하나가 ‘노동’입니다.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넉넉해지면 돈의 유혹을 받지만 절제하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구제하고 선교할 수 있지요. 그리스도인이 이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세계 내적 금욕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욕심에 대해 분명히 비판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에베소서 5장 5절에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우상을 숭배해서 되겠습니까, 권력을 탐하고 돈을 탐하고 명예를 탐하는 것, 우상숭배입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는 ‘자발적 불편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금욕입니다. 조금 힘들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조금 손해 보자는 것이 자발적 불편 운동입니다. 윤리적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윤리적이 되어야 합니다.

손봉호 교수
기독교 세계관을 삶으로 가르치는 교육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비롯하여 옳고 바름을 주창하는 일에 앞서 관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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