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을 준비하던 2010년 12월 어느 날 형님(강희창 집사님을 지금도 형님으로 부르고 있다)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저녁식사 한 번 하시죠?”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니 이야기 주제가 자연스럽게 교회 개척 이야기로 이어졌다.
개척 장소가 정해지면 연락을 달라며 1월에 시간이 되면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스키장에 가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온천 그리고 처음 타 보는 스키로 인해 우리 가족은 모처럼 얼굴에 웃음을 보였다. 좋아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보며 그동안 교회 사역으로 인해 함께 해주지 못한 시간이 못내 미안하였다. 그곳에서의 2박 3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개척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모처럼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형님과 나는 1988년 대구에 있는 대학 기숙사 같은 방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과의 스터디 그룹 선배였기에 더욱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졸업하고 형님과는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다가 몇 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내가 신앙생활 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형님은 너무도 기뻐하셨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필자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졸업한 지 18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역지를 대구에서 서울로 옮겼기 때문이다.
형님은 전공과는 다르게 군에 다녀와서 건축 일에 몸담고 계셨다. 꾸준하게 공부도 하고, 섬기는 교회에서는 안수집사님으로, 주일학교 부장으로 봉사하고 계셨다.
물론 서로의 호칭은 예전과 같지 않았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형님’으로 불렀지만 형님은 ‘목사님’이라고 꼬박 존칭을 해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형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그동안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 비록 지하지만 작은 예배 공간을 마련하였다고. 그랬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면서 장소를 보기 위해 도봉구 창동에서 강서구 내발산동까지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집기나 기자재 같은 것들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은 상태였던 장소를 둘러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하는 분들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곳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꾸며주셨다. 얼마 전에 인테리어 공사가 있어 견적을 받아보고는 그때 형님의 섬김이 적은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달랑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시작한 교회였는데, 하나님께서 형님을 통해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교회에 한 번이라도 온 사람들은 모두 교회가 너무 예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님의 사랑을 말하고 기억한다.


작년과 올해 유난히도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건축 경기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형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사는 형님이 나는 좋다. 이제는 형님을 위해 기도한다. 힘든 중에도 웃음 잃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맡은 사명 잘 감당하는 형님이 되시길 기도한다. 세월이 지나고 직분이 달라져도 희창 형님은 내 마음에 거목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와 큰 힘이 되어준 형님, 감사합니다. 그 겨울의 힐링과 교회 인테리어를 통해 가장 힘든 순간 형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동근 목사(포커스교회·작은샘작은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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