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에는 앞을 거의 못 보는 아내와 다정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신사분이 계시다. 이들은 ‘실버 커플’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두 분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중후한 분위기에 끌려 다가가 인사를 하면 윤기 있는 목소리에 또 한 번 끌리게 된다.
많은 삶의 이야기가 있을 듯해 보이는 차분함 앞에 언제, 어떻게, 왜 시력을 잃게 되셨는지, 늘 곁에서 자상하게 돕는 남편의 마음은 어떤지, 환한 미소를 가진 본인의 심정은 또 어떨지 그 어떤 질문도 쉽게 시작할 수 없다. 단지 서로의 말소리와 손과 어깨를 만짐으로 기분과 감정, 안부를 나누곤 한다.

학구적이며 철저한 성품의 아내는 “중학교 때 부르던 찬송가 가사가 기억에 남아 지금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게 감사하다”고 하며 “긴 세월 신앙의 공백기를 가졌지만 노래를 좋아하다보니 찬송가가 기억에 남아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자아가 강해 잘난 줄 알고 살다가 60이 넘으며 철이 들었다고도 했는데, 이것은 시력 장애와 연관된 말인 듯 했다. 주님은 이렇게 병들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선물로 주시나보다.

아내의 이지적이며 맑은 대화에 실버 남편이 끼어든다.
“여러 분들이 아내 뒷바라지 하느라 제가 힘들 거라고 염려의 눈길을 보내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조금 번거로운 건 있지만, 덕분에 저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되었거든요. 직장 은퇴한 남자들이 이때쯤이면 서로들 어울려 바깥으로 돌 수 있는데, 저는 오히려 가정적인 모습으로 건전하게 살게 되었지요. 심심할 새 없이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고 할까요?”
집안일도 하고 아내의 필요를 돕기 위해 원하는 CD를 듣도록 시중도 들어주고 예배에 앞서 성경과 찬송을 미리 찾아 알려주는 일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빛과 색 정도만 구분하는 아내는 겉으로 보아서는 시각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지 못하는 아내가 오해를 받을까봐 어디를 가나 첫 만남에 이 내용을 알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아내의 말에 ‘당신 편하게 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공부를 좋아해서 최고의 여상을 졸업하고 대학교를 진학한 아내는 목표를 세우면 무엇이든 다 하려는 사람이었는데, 중년이 되며 서서히 눈이 안 보여 내려놓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남편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아내는 “눈이 흐려지니 신기하게도 기억력과 상상력이 풍성해지는 면도 있다”고 하며 그래서 천국을 그리며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좀 달라졌다고도 했다.
“저는 이 사람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건강도 스스로 더 챙기고 있습니다. 남은 날 동안 아내를 옆에서 잘 보살피려고요. 그게 좋은 일 아닙니까?”


아내의 시력 장애로 오히려 자기 관리를 잘하며 기꺼이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실버 남편의 말에 멀리서 가졌던 염려가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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