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다리는 전화, 그리고 식사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현아, 너 또 수진이랑 싸웠냐?”
“…”
“나와라. 밥이나 같이 먹자.”
내가 다니던 교회 대학부 교사이신 안석현 선생님의 또 다른 직업은 ‘연애 상담사’이셨다. 사귀고 있는 커플들의 고민 상담, 그리고 위기에 처한 커플들 불러내서 화해시키는 일까지….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 맹활약하시던 그 시기에 대학부에서는 유난히 많은 커플들이 탄생했다. 나도 그렇게 선생님의 관리(?)를 받던 커플 중 하나였고, 서로 다투고 말없이 며칠을 지내던 나와 여자친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럭셔리한 레스토랑으로 초대되었다. 기싸움 중이던 우리는 좋은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를 핑계 삼아 냉전을 종식시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선생님은 나의 대학 졸업식 전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거셨다.
“수진아, 나와라. 밥이나 먹자.”
졸업식은 여자친구가 우리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날이었고, 아버지가 얼마나 엄하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지 잘 아시는 선생님께서는 긴장하고 있을 여자 친구를 불러내 밥을 사 주시면서 격려해 주시고 좋은 첫인상을 부모님에게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해 주고 보내셨다고 한다.
나를 비롯해 그렇게 선생님의 ‘관리’ 아래 탄생한 커플들은 결혼 후에도 일 년에 한 두 번씩 선생님 댁에 모여서 모임을 가지곤 했다. 아직 초보 신혼부부들이었던 우리가 선생님의 호출을 받아 모임을 가지는 그 날 저녁에는 그동안 부부 사이에 담아 두었던 서운했던 감정들을 쏟아 놓느라 밤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좀 더 부부가 서로를 잘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동안 풀어놓지 못했던 마음속의 말들을 털어낸 시원함에 회복을 경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옆에서 지켜보시며 마음의 든든한 지원자로 계셨던 선생님께서 또 내게 전화를 하셨다. 그 때는 내가 결혼한 지 9년 쯤 되는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대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입사 일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럽게 채용이 취소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있던 때였다.
“현아, 나와라. 밥이나 같이 먹자.”
백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신 선생님께서는 나를 불러 내셔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고 사업을 하고 계신 당신의 경험을 얘기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리고 일어서서 헤어지려는데 선생님께서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이거 가지고 가라.”
그 안에는 현금 10만원과 편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현아, 난 너를 믿는다. 힘내라.’
부모님께도 털어놓지 못하던 고민들을 털어놓을 때 그것을 들어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는 당시 어려운 시기를 넘어가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제는 안석현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선생님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졌고, 선생님께서는 환갑이 지나시고 손주들의 재롱에 시간 가는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여전히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은 반복되는 일상에 얽매여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쉼표’를 제공한다.
“현아, 잘 지내냐? 규원이 한국 들어온단다. 애들 좀 모아서 밥 한 번 같이 먹자.”
선생님의 전화 한 통에 우리는 다시 대학생이 되고, 사회 초년생이 되고, 신혼부부가 된다. 어쩌면 그 시간만큼은 선생님께서도 우리를 처음 만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시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뽀로로 극장판을 만들고 있다고 하자, 손주들이 뽀로로를 너무 좋아한다고 언제 개봉하냐고 몇 번이나 물어 보시던 선생님께 이번엔 문자가 왔다.
‘슈퍼썰매대회 뽀로로 우승! 공동 프로듀서 남현 추카 ^^, 근데 DVD는 언제 나오냐?’
선생님, DVD 나오는 대로 몇 장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손주들한테 인기 좀 끄시겠죠?

남현 집사(주식회사 오콘 상무이사)

※ 지난 147호 감사릴레이 중 '발달장애를 가진 큰아들'이란 표현은 편집부에서 글의 내용을 오해해 잘못 붙인 발문입니다. 이 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가족 여러분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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