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엔 창은 베트남에서 스무 살부터 한국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알콩달콩 사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레 한국 남성에 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을 만나게 된 건 이러한 자신의 바람대로 푸근한 느낌의 의지하고 싶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이 차는 좀 있지만 안경 너머 웃는 눈이 안정감을 주었다고 했다.
서울, 한국- 생각했던 아름다운 집이 아니었다. 남편이 한국말을 알려주느라 늘 애쓰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연로하신 어머니가 하는 말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는 이국의 며느리를 배려할 기운이 없는 것이었다. “저기 바구니 가져와라.” 바구니? “저기, 저거.” 우엔 창은 그 쪽으로 가서 하나씩 들어 보인다. “이거요?”, “이거요?” 어머니는 화를 내시고 어린 며느리는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드시는 음식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뿐이었다. 짜고 맵고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들…. 임신한 우엔 창은 이런 음식이 낯설어 고향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 어디 가서 얘기라도 하고 싶지만 누구를 믿고 속을 드러낼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동네 복지관에 가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어렵기만한 시어머니와 낮 시간을 보내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말, 한국 문화를 배워 어머니를 곧 시원하게 해드릴테니까요”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 즈음, 우엔 창은 복지관서 고향 사람을 만났다. 비슷한 처지라 금방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다른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우리 시어머니는 생선전이나 부추전, 야채가 많이 들어간 전골을 해주는데 맛있다”는 것이다. 또 소고기 야채볶음이나 닭요리는 고향 음식과 비슷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니 우엔 창은 자신이 한국요리는 모두 짜고 맵다고만 생각한 게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왜 그토록 완고하신가. 어쩌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세대차가 있는 듯 했다.
아이가 태어나니 일은 많아지고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이래저래 울 일만 자꾸 생기고…. 그때, 남편이 교회에 데리고 가서 처음으로 아기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으며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따스한 정을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편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풀기 위해 남편이 용단을 내려 시댁과도 분가를 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엔 창을 지켜본 교회 전도사는 “참 총명한 사람이에요. 어려울 텐데 매주 아이와 성경구절을 외워 와요. 성실하고 열의가 있는 엄마예요”라고 칭찬한다. 그간 열심히 공부해 베트남어-한국어 기본 통역 자격증을 받은 우엔 창은, 자신이 한국에 처음 와 애쓴 경험을 살려 고국에서 오는 사람들의 통역을 해주고, 자리 잡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잘하려면 한국 친구가 있어야 해요. 좋은 한국 친구를 갖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먼 곳으로 시집와, 낯선 말과 문화 속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한 걸음씩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우엔 창이 활짝 웃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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