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의 말들
연초가 되니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교훈의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고백하자면 난 그러한 ‘교훈의 말’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대로 스스로를 내버려 두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성격이라, 자기계발서에 담긴 글이나, 어느 유명하다는 ‘멘토’의 강의가 가끔 카페인 같은 작용을 한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래 이렇게 나태해선 안 돼’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교훈모드에 경도돼 있다가도 ‘왜 그래야만 하는데?’라는 반발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얼마 전 한 강사의 ‘하루 경영법’이란 강의를 듣게 됐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루를 보면 그 사람의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친구와의 전화 수다로 반나절을 보내고 의미 없는 저녁 약속으로 하루를 흘려보내는 평범한 대학생의 하루를 예로 들었다.
뜨끔했다.
나의 대학 생활이 그러했으며 지금도 종종 그런 ‘하루’가 내겐 있으니 말이다.
강사가 조언하길, 시간을 잘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걸 찾아보라는 거였다. 예컨대 찜질방에 가면 읽을 책이나 공부할 것을 가져가고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회화라도 들으라는 거였다.
한 번 나도 실천해 봤다.
산책을 하면서 오디오 성경을 듣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며 책을 읽었다. 집중도 잘 되고 좋은 듯 했으나 내 경우엔 부작용이 더 컸던 것 같다.
도무지 생각할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엔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집에 있으면 인터넷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십상이고 밖이라고 경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카톡에 답문도 보내야 한다. 사소하고 쓰잘 데 없는 생각들로 시간을 보내던 나의 대학시절 환경과 달라도 너무 달라진 것이다.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문득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은, 한 번에 두 가지를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하는 하루경영법이 아닌 한 번에 한 가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할 땐 아무것도 듣지 않고 누구와 전화 통화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걷는 것이 내겐 필요했다. 그저 산책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의 발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동네의 구석구석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얼마 전 화가 났던 일들, 그러니까 이성적으론 결론이 났지만 어쩐지 응어리진 것 같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술술 흘러나가는 것 같다.
버스를 탈 때 20센티 앞에 있는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창문 너머 20미터 안에 보이는 바깥 풍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인다. 노점상이 어느 순간 왜 사라졌는지, 저 건물 앞에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들고 있는 피켓엔 무엇이 쓰여 있는지도 보인다. 굳이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려 하지 않아도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 이상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 유명강사의 말을 흉내 내 나도 한 마디 하자면, “절대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려 하지 마세요. 걸을 때는 걷기만 하세요. 찜질방에선 찜질만 하세요.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이 보다 더 풍부해질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반발심이 솟구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배지영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오란씨’(민음사)와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비’(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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