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고소한 빵 냄새

이 이야기는 2009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사님 저… 범준이 엄마인데요. 댁에 계시면 잠깐 들릴게요.”
전화 너머로 큰 애의 같은 반 친구 엄마인 박선영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일까? 같은 반 친구이기는 해도 우리 교회의 특성상 섬기는 예배가 달라, 몇 년째 눈인사를 하며 지냈지만 별다른 교류를 나누고 있지 못한 분이었다.
잠시 후 도착한 집사님은 수줍은 얼굴로 “집사님, 크리스마스 이브에 홈 메이드 쿠키와 케이크를 드리고 싶어서요. 맛나게 드셔요. 그리고 저도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하며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건네주고 총총 걸음으로 돌아가셨다.
사실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된 그때는 남편이 3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고,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쉬지 않고 해왔던 크리스마스 칸타타도 함께 하지 못하고 여느 해와는 전혀 다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던 때였다.
집에 들어와 남편과 함께 상자를 열어보니 각기 다른 쿠키와 케이크가 너무나 정성껏 포장되어 들어있었고, 상자 한 켠에는 편지 봉투가 들어 있었다.
그 봉투속에는 ‘집사님 가정의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요. 분명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이 있으신 줄 믿고 기도하고 있어요. 집사님 가정의 소식을 들은 날부터 제가 기도하며 모은 조그만 정성이에요. 이것 밖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지만 이것이라도 집사님 가정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집사님 사랑해요’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돈이 들어 있었다.
10월초 나의 남편이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날부터 홈 메이드 쿠키와 케이크를 판매한 모든 수익금을 차곡차곡 모아 선물해 주신 것이었다. 손수 만든 쿠키가 하나씩 팔릴 때마다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성껏 모은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잇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와 또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나눌 수 있을까…. 그리 친분이 두텁지도 않았고, 그저 눈인사만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동안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쿠키와 케이크를 굽고 포장하며, 봉투에 차곡차곡 수익금을 모았을 그 손길과 사랑을 생각하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남에게 기도 받는 삶보다 기도해 줄 수 있는 삶,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집사님으로부터 받은 그것은 내가 갚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갚을 수 있는 기도도 아니었다.
집사님의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 가정은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로부터 말 할 수 없는 사랑과 기도를 받게 되었다. 받지 못하는 내 마음, 받은 것은 꼭 갚아야 하고 더해 주어야 하던 내가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며 처음에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분들이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을 전해 주실 때 ‘난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힘겨워 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내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랑을 주셨다는 걸, 십자가 위에서 날 위해 죽으심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구원을 주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다.
오늘도 집사님 댁에서 홈 베이킹을 배우며,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세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나눈다. 우리들의 가장 기쁘고 또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나누며 우리의 삶 속에 생생히 살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나눈다.


박은주 집사(서울모테트합창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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